윤석렬 정부가 과학기술을 홀대했다고 비난했던, 언론들이 필자가 십여년간 다뤄온 수학 과학 관련 글을 받아써주지 않는 것은 도대체 뭔가. 그러고도 윤석렬 정부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필자가 다뤄웠던 글들이 가치가 없을까. 그건 아니다. 챗GPT에 물어보면, 대개의 글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평하는 글들이었다.
사랑을 꽃피워 미래를 낳은 청춘 남녀가 취직에 가산점을 준다고 서로를 헐뜯는다. 지하철 무임승차로, 젊은 이들의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할일 없는 노인들이 나들이를 나서고 마침내 젊은 이들의 지하철 요금을 올린다 한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중장년층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젊은 이들의 취업난이 가중될 것이 우려스럽다. 더내고 더받자는 국민연금 때문에, 늘어나는 부양비가 미래를 더 짓밟는다. 자본과 노동이 자본주의 주요모순이라며, 기업주들을 힐난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지속적인 임금 인상과 복지 요구에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뿌려진다.
이젠 지난 윤석렬 정부의 과학 기술 홀대 정책을 비판하는 신문들조차도, 필자가 쓴 수학이나 과학적인 작은 발견을 다룬 글을 받아써준 곳은 없다. 정말 자신들이 과학 기술을 중시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하는데, 최고의 언론이라 하는 조선일보부터, 사이언스 동아나 자칭 진보라 하는 오마이, 한겨레, 경향 등에선 한번도 받아써주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특종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저주를 퍼부어도, 분노와 슬픔을 가눌길이 없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나를 파산의 위기에서 구원해줄 이는 없는걸. 부자에게 돈을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은 결국 하향평준화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노력과 능력으로 빈부를 쉽게 뒤집지도 못한다. 국가가 빈부의 순위를 조정할 수는 없기에, 아니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때부터, 정경유착으로 국가가 빈부 순위를 정해주었기에, 이를 탈피하지 못하고 지금도 국가에 의해 빈부의 순위가 정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빈부의 정도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있으나, 순위는 고착화되고 되물림되어 가고 있다.
모두 한마음으로 국가 잘되기를 바래도 잘될지 모르는데,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했던, 굴종을 겪어야했던 사람들이 어찌 국가 잘되기를 바랄 것인가. 뛰어난 인물로 소개되면, 그즉시 흠잡을 데를 찾고 까는 재미에 살게 된다. 필자는 그런 시기와 질투, 분노의 감정을 뒤로하고, 기본적인 사고부터 다시하고자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부터 재정비하자고 한다.
아이들이 선동가들을 따라 가고 나는 홀로 남아 떨어지는 낙옆만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누구네는 해외여행을 갔다왔다며 부러움을 표했고, 아이들은 왜 우리집은 보통의 가정집, 평범한 가정집처럼 살지 못하냐고, 여지껏 전월세를 돌아다니며 살아야하냐고 따져묻는다. 마음같아선 세상이 확 뒤집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누르고 또 누르고 꾹꾹 눌러서 글을 계속 쓴다.
당신은 공부잘하는 아들에게 굳이 지방대를 가라할 수 있나? 필자는 지방 3류대를 나와 3류 회사를 다니며 평생을 3류 인생을 살아왔다. 내가 공부를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있지만, 이 사회의 학벌차별에 대한 불만도 큰 것이 사실이다.
간병비가 재난적 상황인 것은 모두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미 시민들은 간병비 불안을 해소할 방법으로 민간 간병 보험에 많이들 들고 있다. 이번 대선 후보들도, 간병비를 국가 차원에서 보장해주는 체계등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모든 국민들의 간병비를 보장하기에는 재원이 숙제다.
낯선 사람들, 낯선 거리를 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간다. 가난과 외로움은 가는 길 내내 동행한다. 어디로 가야 나를 반기는 이가 있을지 모르고 가난과 외로움에 지쳐, 주저 앉을까 망설이기도 하지만, 그냥 간다. 혹시나, 신의 은총이 담겨있는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안고 그냥 간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것도 이제는 다양한 방법이 시도될 수 있다. 앞서서 썼던 방법보다 보다 조금은 더 쉽고 보다 많은 다수의 학생, 챗GPT말로는 고등학생 수준의 수학이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N이 홀수인 경우는 A의 N제곱+B의 N제곱이 두 밑수의 합(A+B)로 인수분해되고, 그 몫이 두 밑수의 합의 N-1제곱이 되지 않기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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