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ealth money&policy
- 저잣거리report
- 건강 재화
- 보험이야기
- 식도락과 즐길거리
- 독자의 뉴스와 의견
- 기자의 說說說
- people
살기위한 비용은 어마어마한데, 살아서 얻는 기쁨, 행복감은 낮으니, 자살률도 높고, 출산을 기피하는 것 아닌가. 이를 최대한 단순화시켜 물가는 높고, 소득은 높지 않은 것이고, 더 단순화시키면, 부동산 가격은 어마어마하고 소득은 쥐꼬리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이비 진보들은 진보가 표를 못얻는 이유가 부동산 투기에 범죄시화하였기 때문이란 말을 하지만, 소득에 붙는 세금, 사회보험등 부담은 줄이고, 부에 대한 세금이나 사회보험 부담을 늘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빈부차는 줄이고, 빈부의 역전을 가져올 수 있다.
금융 제한과 동시에 펼쳐진 재정 긴축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나. 구조조정은 가격을 조정해서 가격을 보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실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러네 대출을 제한하고, 정부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요양보호사일을 하는 게 아니다. 요양보호사의 소득을 올려주는게 우선이다. 즉 구조조정은 금융정책이 아니라, 가격정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현 정치 지배자들은 민중에 대한 헌신하겠다는 사명감은 없고, 자기 권력만 잡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 굳이 야당이 집권해야 하는가. 그냥 그들은 권력을 잡지 않고, 그 언젠가 운동권 학생들 열정처럼 민중에대한 사명감으로 투쟁만 하면 되지 않는가.
살기위해 기울이는 비용 즉 고난과 역경이 살아서 얻는 행복과 만족감을 넘은지 오래다. 저출산도 출산과 양육의 비용이 양육에서 얻는 이득보다 높다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도 지금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이 살아서 얻는 기쁨과 행복을 초과한지 오래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것은 가치와 가격의 왜곡 때문이지 않을까. 가치와 가격의 왜곡은 어디에서 발생할까. 시장경제가 아닌 자본주의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지랄같은 세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기득권논리가 득세한다. 그 대표적인게 세금 많이 낸 사람이 애국자이며, 그러니 그들에게 권리를 더 줘야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야당은 또 어떤가. 권리당원이라고 해서, 당비를 6개월이상 낸 사람들에게 투표에서부터 권리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한다. 돈많은 자본주가 정당을 만들면, 그 사람 맘대로 당을 운영하는 게 좋을까. 지금 많은 소상공인은 당비가 아니라, 카드값 연체를 피하기 위해 피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러분은 괘찮은가요? 난 괜찮지 않습니다. 자금 압박에 시달려 모든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연이어진 파산 위기에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살고 있다. 주간 보호를 다니는 치매 노인들에게 대통령이 누구냐고 묻자 제대로 대답하는 노인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대답한 사람이 윤석열이라고 하자, 파면됐다하니, 그럼 누구냐고 묻는다. 나도 치매 노인 만큼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고 있다. 누가 대선에 나오는지 모든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나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해 일어나서 주변을 돌고 다시 앉고 하며 쓰고 있다.
극우 집회에서, 진보는 시진핑 --끼라고 해보라 하면, 못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관세 전쟁으로 세계질서가 새로운 냉전이 형성될까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이미 국내에서 중국편이냐, 미국편이냐, 아니 중국에 설것인지 미국에 설것인지 묻는 이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관세전쟁dl 기름을 붓는 겪이 될까 두렵다.
왜 극단적인 진보주의자가 극우파가 되는가. 왜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반사회적인 경향이 되는가. 남녀간의 애증의 감정과 같지 않을까. 사회를 그토록 사랑했으나, 자기에게 돌아오는건, 가난과 천대뿐 아니겠는가. 민중이라고 하지만, 특정되지 않는 민중은 누구에게나 그들을 인정해줘야하는 의무같은 건 없다. 결국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야만 하는 비참한 결과가 나온다. 뒤집어 엎어야 한다.
29세때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두번 하고 오른쪽 편마비 환자로 평생을 살아온 어른신은 펴지지 않는 오른손 손가락을 펴보이여, 어눌한 말로 '나는 많이 아프지만,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 찬양'하며 찬송가를 부른다. 입소한 다른 어르신들도 따라 부른다. 그렇게 예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슬픈 스토리를 가진 요양보호 대상자들인데, 무엇을 찬양한단 말인가. 주가 있다면, 이렇게 주를 찬양하는 이들에게 더 고통을 주는 악마보다 못한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의 찬송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된다.
고상한 여인네가 천한일을 마다하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어렸을땐, 부모의 직업 때문에 창피해할 수도 있지만, 철이 들고나서는 그런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머리도 좋고 고상한 여인이 천한 일을 거침없이 해내고 있는 모습을 볼때, 무척이나 마음이 끌린다. 가만히 보면 얼굴도 예쁘다. 쌍커풀이 짙게 드리우고, 온화한 얼굴에 풍체도 온화하게 느껴지는 인상이다. 그런 여인이 이런 바닥에 오게 된 것이 무척이나 궁금할 정도다. 그러다가도 내일 모레로 다가온 파산 때문에 온통 머릿속은 뒤죽 박죽이 된다. 주변의 친지들은 다 조금씩이라도 도움을 받았다 보니, 이제 청할때도 없다. 그냥 이대로 주저않는가 생각하니 그냥 모든게 싫어질 뿐이다. 정의 사랑 명예도 식후경인가 보다.
엊그제 소풍을 가서 찍은 자기 사진을 보고, 누구냐고 묻자 친정 엄마라고 하는 어르신. 다시 사진 주인공은 어르신이라고 말을 하자, 친정 엄마는 더늙었다며, 그럼 언니라고 고쳐 말한다. 그런 어르신이 손뼉을 치며 나의 살전 고향은 꽃피는 산골 하며 동요를 부르는데, 왜 나는 슬퍼지는지. 신이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따져물어보겠으나, 눈으로도 귀로도 신의 존재를 찾지 못하겠다. 눈에 귀에 증거없어도, 믿는다는 찬송가같이 어처구니 없는 말을 뱉으며, 우린 그렇게 쓸모없이 늙어가는가. 불면으로 날을 새우는 날, 나는 내가 괜찮지 않음을 느끼지만, 어디에서 도움을 청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자꾸만 과학의 혁명을 채근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