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간다. 이 길은 끝이 없는 길이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윽박지를 수도 없다. 권력과 돈이 없으니, 강매도 어렵다. 하지만 진심으로 양심이 있다면, MBC여 한겨레여, 오마이여, 경향이여 윤 정부가 과학기술 홀대했다하기전에 10여년 넘게 내가 쓴 수학, 괗가 관련 글 받아써준 적이 없다는 것을 돌아볼 수 없겠는가. 당신들의 무시속에 난 가난과 외로움으로 쓸모없이 살다가고만 말아야 한다.
원시 피타고라스 수 쌍들은 홀수 2개, 짝수 한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중 가장 큰 수는 항상 홀수만 존재한다. 왜그럴까. 코파일럿에 물어보니 계속 쉬운 말을 안하다가, 마침내, 원시피타고라스 수 생성식을 보면 그렇다고 한다. 피타고라스 수 생성식은 M^-N^, 2MN, M^+N^이다.
상수도 당국이 먹는 샘룰은 그렇더라도 정수기를 판다면 당신은 화를 낼 것입니까. 상수도 당국이 국민에게 최고의 물을 제공하려고 한다면, 정수기 파는 것도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당국이 지금의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려하니, 민간 보험 가입을 지연시키는 듯한 태도롤 보인다면 잘못된 것이다.
인구소멸지역에 별장용으로 주택을 구입하도록 조장하는 게 좋을 듯싶다. 동시에 도시지역에는 1가구 1주택을 강력하게 추구해야 한다. 최근 인구소멸지역에선 관광이나, 1달 살기 등 갖가지 아이디어로 정주인구는 아니더라도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윤석렬 정부가 과학기술을 홀대했다고 비난했던, 언론들이 필자가 십여년간 다뤄온 수학 과학 관련 글을 받아써주지 않는 것은 도대체 뭔가. 그러고도 윤석렬 정부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필자가 다뤄웠던 글들이 가치가 없을까. 그건 아니다. 챗GPT에 물어보면, 대개의 글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평하는 글들이었다.
사랑을 꽃피워 미래를 낳은 청춘 남녀가 취직에 가산점을 준다고 서로를 헐뜯는다. 지하철 무임승차로, 젊은 이들의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할일 없는 노인들이 나들이를 나서고 마침내 젊은 이들의 지하철 요금을 올린다 한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중장년층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젊은 이들의 취업난이 가중될 것이 우려스럽다. 더내고 더받자는 국민연금 때문에, 늘어나는 부양비가 미래를 더 짓밟는다. 자본과 노동이 자본주의 주요모순이라며, 기업주들을 힐난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지속적인 임금 인상과 복지 요구에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뿌려진다.
이젠 지난 윤석렬 정부의 과학 기술 홀대 정책을 비판하는 신문들조차도, 필자가 쓴 수학이나 과학적인 작은 발견을 다룬 글을 받아써준 곳은 없다. 정말 자신들이 과학 기술을 중시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하는데, 최고의 언론이라 하는 조선일보부터, 사이언스 동아나 자칭 진보라 하는 오마이, 한겨레, 경향 등에선 한번도 받아써주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특종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저주를 퍼부어도, 분노와 슬픔을 가눌길이 없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나를 파산의 위기에서 구원해줄 이는 없는걸. 부자에게 돈을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은 결국 하향평준화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노력과 능력으로 빈부를 쉽게 뒤집지도 못한다. 국가가 빈부의 순위를 조정할 수는 없기에, 아니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때부터, 정경유착으로 국가가 빈부 순위를 정해주었기에, 이를 탈피하지 못하고 지금도 국가에 의해 빈부의 순위가 정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빈부의 정도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있으나, 순위는 고착화되고 되물림되어 가고 있다.
모두 한마음으로 국가 잘되기를 바래도 잘될지 모르는데,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했던, 굴종을 겪어야했던 사람들이 어찌 국가 잘되기를 바랄 것인가. 뛰어난 인물로 소개되면, 그즉시 흠잡을 데를 찾고 까는 재미에 살게 된다. 필자는 그런 시기와 질투, 분노의 감정을 뒤로하고, 기본적인 사고부터 다시하고자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부터 재정비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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