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0일 보건복지부·중소벤처기업부·국무조정실은 비대면진료 약 배송 대상을 모든 환자로 확대하는 논의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였다. 개정 의료법 시행을 넉 달 앞두고 그 법이 정한 배송 대상의 한정을 해제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의약품 사용과 의료이용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OECD 보건통계 2026」에 따르면 2024년 국민 1인당 의약품 판매액은 회원국 평균의 약 1.5배, 외래 진료 횟수는 2.7배에 이른다. 항생제 사용량과 고령층의 다제약물 처방 역시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약품 정책을 더 쉽고 편리하게 약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접근성 확대는 의약품의 적정 사용과 안전한 약물관리와 함께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약 배송을 통한 접근성 보장이 우선 필요한 대상은 물리적·기능적 제약으로 약국을 이용하기 어려운 환자들이다. 개정 의료법이 배송 대상을 섬·벽지 주민, 장기요양수급자, 장애인, 감염병환자, 희귀질환자 등으로 한정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고려한 것이다. 의약품 사용의 안전성과 적정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비대면 환자 전면 약배송 전환부터 추진해서는 안 된다.
국회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개정법의 제안이유는 비대면진료의 수도권 쏠림과 다이어트약·탈모약 등 비급여 의약품을 손쉽게 처방받는 통로가 되고 있는 점을 본래 취지에 어긋난 문제로 인식하고, 입법 목적이 사회적 우려의 해소와 안전성 강화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심사평가원 자료상 여드름치료제 이소티논의 비대면 처방 점검량이 2년여 만에 126배 증가한 사실은 그 우려가 이미 현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임부 금기 성분이 플랫폼의 평점과 후기 경쟁 속에서 처방되어 온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경험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도 전에 약배송 대상 확대부터 결정하였다.
대상 확대가 미치는 영향은 의약품 사용 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배송 대상이 모든 환자로 넓어지면 진료와 처방, 조제와 약 전달이 하나의 민간 영리 플랫폼 안에서 완결되고, 환자가 어느 약국을 이용할 것인가는 사실상 플랫폼의 노출 정책이 결정한다. 정부는 하위법령으로 비대면진료 전담약국을 금지하겠다고 하나, 특정 약국을 지정하지 않더라도 노출 순위와 수수료 조건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조제 물량은 소수 약국에 집중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역약국은 플랫폼 처방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 구조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훼손되는 것은 지역사회의 약물 안전망이다. 전국 2만 5천여 개의 지역약국은 별도의 재정 투입 없이 이미 전국에 분포한, 주민이 가장 가까이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일차보건의료 기관이다. 주민의 복약 이력을 축적하고, 중복투약과 상호작용을 점검하며, 만성질환자의 복용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지역에서 가능한 것은 이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통합돌봄과 방문약료, 다제약물 관리 또한 여기에 의존한다. 약 배송 대상이 전면 확대된다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통합돌봄과 '한국형 주치의 모델'이 딛고 서야 할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셈이다.
이러한 방향은 이번 발표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7월 22일 발표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추진전략」은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을 축으로 한 공적 인프라 확충을 제시하였으나, 같은 전략에서 의약품 대책은 도서·벽지 비대면진료 시 약 배송과 무약촌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점 확대에 머물렀다. 병원 영역에서는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의약품 영역에서는 유통 규제완화만을 대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취약 시간대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공공심야약국은 2026년 4월 기준 전국 242개소, 연간 예산은 57억 원에 그친다. 지역필수의료에 수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과 견주면, 지역약국이 수행하는 약물 서비스에 대한 공적 지원은 사실상 부재하다.
우리는 이번 논의를 중소벤처기업부와 국무조정실이 함께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정부가 의약품 접근성을 국민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의 의제로 다루는 순간, 정책의 성패는 국민의 건강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의 수익으로 결정된다.
이에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기간 축적된 처방 자료에 대한 평가를 선행하여 공개하라.
하나.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약 배송 확대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개정 의료법이 정한 배송 대상의 한정을 하위법령에 엄격히 반영하라.
하나. 취약계층의 의약품 접근성은 약 배송이 아니라 안전한 의약품 복용을 전제로 설계하라. 통합돌봄과 '한국형 주치의 모델'에 약물관리를 실질적으로 연계하라.
하나.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추진전략」의 의약품 대책을 공공적 관점에서 다시 수립하고, 편의점 판매 확대에 앞서 공공심야약국을 전면 확대하라.
개정 의료법은 아직 시행되지도 않았다. 그 법이 무엇을 우려하여 배송 대상을 한정하였는지, 그 우려가 해소되었는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다. 의료는 민간 영리 플랫폼의 사업 동력이 아니며, 국민이 안전하게 약을 사용하도록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시민사회와 함께 정부의 행보를 감시하고 대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