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파산 앞에 있어, 검찰 개악이든 통일문제건 신경쓸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신문 볼 시간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아니면 여러 원인에 의해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보일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도 주적 논쟁이 오랜 기간 펼쳐진 데 대해 한마디 보태야 할 것이다.
북한이 우리를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북한을 주적이라고 말하면 안될까. 6.25남침마저 부정하려는 자들이 있고, 아니 북한 마저 6.25전쟁을 해방전쟁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생각하면 남침을 부정할 필요는 하등에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필자가 생각하기엔 오늘 지금 당장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해야 한다. 자녀들이 군에 가 있다면 더 생각해보라. 우리의 자녀들은 누구를 향해 총을 겨누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다만 주적은 시대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된다. 북한이 대화와 타협의 평화의 길로 나온다면,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고 하면 된다. 지금 당장은 적대적 관계를 선언하고 나선 마당에 우리는 주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나는 답답하다는 것이다.
즉 북한도 적대적 고나계가 아니라고 하고 우리도 주적이 아니라고 하면 될 일이다.
북한을 ‘주적’이라 부르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가
북한이 우리를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을 ‘주적’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한다. 마치 그 한마디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평화를 깨뜨리는 위험한 발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적이 적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대관계를 적대관계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북한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적대적인 체제의 대상으로 규정해왔다.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으며, 실제로 대한민국을 향한 군사적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굳이 그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주저하는가.
6·25전쟁도 마찬가지다.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도 6·25전쟁의 성격을 둘러싸고 온갖 해석이 난무한다. 북한이 이를 ‘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우리가 대신 감싸줄 이유는 없다.
역사는 상대방의 표현에 맞춰 다시 쓰는 것이 아니다.
남침을 남침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거에 대한 증오를 키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해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너무나 평범한 상식이다.
물론 북한을 영원히 ‘주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국가의 적대관계는 고정된 종교적 교리가 아니다. 국제정세와 남북관계가 바뀌면 그 표현과 정책 역시 바뀔 수 있다. 북한이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적대하지 않고, 핵무기를 폐기하고,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며, 평화공존의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도 그에 맞춰 관계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부터 현실을 지워버리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평화는 현실을 외면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군사력을 정확하게 알고, 상대의 의도를 냉정하게 판단하며,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분명히 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오늘 당장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세력이 누구인지, 우리의 영토와 국민을 직접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 따져보면 답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이 마치 평화를 위한 대단한 지혜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이상하다.
말을 바꾼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호랑이를 호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호랑이의 이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보에서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단어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북한을 주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쟁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막을 힘과 의지를 갖추는 것이 전쟁을 막는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주 단순하다.
적대하는 상대를 적대한다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평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