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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과 진실 그리고 진보론의 회의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없어야지만, 그것이 권장하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소수 성에 대한 입장을 말로 명확하게 하기 힘들다. 그러니 성소수자의 자신감 넘친 듯한 행보에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만 쌓인다. 노조에 대한 입장도 그렇다. 일부노조가 마치 종교처럼, 약자를 위한 투쟁이 아닌, 자신의 기득권만을 내세우는 것 같은 상황에서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자유를 내세우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사실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종교는 권력자들에 대항해 민중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초기 종교와 다르게 지금은 종교가 기득권자들이 되고 지배자들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거부감을 갖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극히 일부 목사는 부자가 천당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로, 서민들을 위로하긴 하지만, 상당수 종교는 지배자가 되어 있고, 정치 권력과 결탁되어 기득권을 옹호하는 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노조가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인, 노동당 출신의 정치인이 지배자가 되고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운동과 정치로 변모되어가는 게 진보여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종교도 그렇게 변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여자가 예쁘게 보이려고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시집을 잘 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진실일까? 아니 그와같은 막말도 남자 또한 여자를 꼬시기 위해, 멋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게 진실일까?


인간의 속된 욕망을 노골화시키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 세상의 문명이 유지될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라. 그건 어쩌면 막말이 아니라, 나의 분노 나의 슬픔을 해소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막말이 진실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건 나는 이렇게 노력을 해도 부자가 못되는데, 누구는 쉽게 쉽게 권력에 돈을 거머쥐는 듯한 데서 오는 분노가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이다. 


지금도 남이 잘되기보다 남도 나만큼의 고통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그런 기사를 찾아 나를 달래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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