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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을 해결하는 방법중에, 혁명과 전쟁은 최 극단의 방법이다. 파괴는 성장이다란 말을 처음 들었을때, 설마하지만, 가까운 이웃 국가가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성장을 했다는 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정말 파괴가 성장일까. 아쉽게도, 국민총소득은 가치를 화폐로 평가한 총소득이기에, 부가가격의 총합으로, 가치가 파괴되어도, 가격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원주민을 내쫒고, 고래의 전통을 없애버린 것도 가치보다 가격의 왜곡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옛날 집과 수많은 문화의 가치가 가격에 반영되지 못해, 새로운 것으로 밀려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린 파괴가 성장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호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왜 그리 먹고 싶은게 많을까. 추위도 그렇다. 돈이 떨어지면, 추위도 그렇게 잘탄다. 지금도 매우 춥다. 피같은 돈이 잘돌아야 추위를 잘 타지 않는것같다. 고령과 고령사회는 피도 돈도 잘돌지 않을 것같아 보여 특히 춥고 배고프다. 걷다보니 어느새 절벽에 다다른 것같다. 무명의 가난과 외로움은 불안과 우울로 하늘을 흐리게 하고, 흐릿한 길에 한 발자욱만 잘못 떼도 절벽에 떨어질 것같은 상황이다. 순환마디길이를 알면, 소수 판별과 소인수분해를 쉽게 할 수 있다. 순환마디길이와 소수는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7의 순환마디길이는 6으로 당장 소수라고 판별할 수 있다.
진보는 불가피한 부동산 규제때문에, 보수는 소득보다도 자산 주도 성장(규제완화)떄문에 실패를 거듭한다.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위해서 비주류는 주로 규제하고자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보수가 들어서면, 모두다 규제를 풀어 투기꾼이나 약탈꾼들은 부동산 불패론을 믿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만, 진보와 보수를 번갈아 집권토록 하게 할 뿐이다.
주요 일반약 값이 또 올랐다. 최근 필자가 자주 다니는 동네약국은, 판콜이 5개 들이 한 곽에 3,500원으로 인상했다는 등 주요 일반약값을 인상한다고 품목과 인상후 가격을 게시했다. 요즘같이 물가 오름세에 약값만 오르지 않는 것도 이상할터, 약값도 올라가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증환자에게 일반약은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사실 항생제 내성을 예방하는 방법으로도 일반약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춥다. 무명의 가난과 외로움은 추위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의학자는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살찐 사람이 추위를 더 탈까, 마른 사람이 더 잘 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하지만 혈액순환이 좋고, 대사기능이 활발한 사람이 추위를 덜 탈 것이란 생각이다. 왜냐하면, 손이 시릴때도 조깅을 하다보면, 어느새 손이 시럽지 않은 것을 보면, 심장의 혈액이 손끝, 발끝까지 빠르게 순환하면 체온이 잘 유지된다고 보이기 떄문이다.
초저출산율이 누군가는 주거비, 양육교육비 때문이라고 하지만, 양극화 떄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높은 자살율도 양극화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양극화는 욕망은 보이는 것에 따라 높지만, 실제 자신이 처한 환경은 미미하게 만들기 떄문이다. 사람들은 비교하지 말라지만, 비교를 안할 수가 없다. 비교하지 말라고 하기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체적으로 일정 정도의 삶을 누리게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아무리 말해도, 멈추지 않는 폭주에 휩쓸린 인생들의 넋을 위로한다.
중년이라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철학자란 말을 학교 교육에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풍족하지만 무지에 가까운 인간으로 살기보다는 현실에서는 배고프더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라는 격언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돈만 열심히 벌어라고 한다. 대개가 배고픈 철학자보단, 배부른 돼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투기꾼 약탈꾼들이 자신들이 정당한 것처럼, 그리고 유능한 것처럼 큰 소리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돈만 열심히 벌어라는 말을 가치를 생산하는 데 주력하라고 하면, 어떤가. 가치를 생산하면 돈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투자란 말이 있는데, 결국은 기업이 벌어들인 돈만을 가치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왜 교회를 다녀도, 아프고 오래 살지도 못한가. 아니 신이 있다면, 착한 사람이 복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이 잘살았고,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 정치인이 되었다. 심지어 착한 사람은 무능하고 못난이 같이 대접받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신이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 독하게 살아야 할까? 착하게 살면 진짜 복이 들어오지 않을까? 만약 세상사람들이 당신의 선행을 모두가 인식하고 대가를 주려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후원을 기다리며. 내밀어주기를 기다기전에 먼저 손을 내밀줄 알았다면,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기전에 내가 먼저 웃어 너를 웃게 할줄 알았다면, 늦은 후회는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격 결정력은 지금은 공급자가 더 강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만족한 만큼 값을 지불하거나 값을 정하는 결정력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일부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에 소비자가 지불하고자하는 만큼의 값을 지불하거나, 대개가 후원이란 이름으로 소비자의 가격결정력이 우위에 서는 경우가 있다. 벼랑끝에 다다란 느낌이다. 무명의 가난과 외로움에 지치고, 며칠 앞으로 다가온 카드값을 막으러 분주한 나날들, 그래도 쉬지않고 밀고 왔지만, 결국은 벼랑 끝에 더 가까워지고 말았는가. 독자들의 따스한 힘을 주기 간절히 바란다.
국민들은 과학을 믿지 못한게 아니라, 과학자의 탐욕을 믿지 못한다가 옳다. 학벌 좋은 선동가들이 국민이 과학을 믿지 않는다고 나무랄때면 미칠 것 같다. 일상 생활에서도, 매사에 명문대 학벌을 가진 이들에게 자기보다 많이 알것이라고 주눅이 들었는데, 하물며 과학을 들먹이며 하는 말에 무어라 문제제기도 못하게 된다. 그러나 과학은 완성품이 아닌 우리가 알아가는 과정의 학문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이번 글에선, 경제와 정치에 무관한 과학이란 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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