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경실련·보건의료노조·한국노총·환단연)는 정부가 2월 10일 제7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보정심)에서 확정한 2027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 490명(향후 5년 연평균 668명)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정부는 2027년 490명, 2028~2029년 613명, 2030년 이후 813명 수준의 단계적 증원을 밝히고, 증원분을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하며 2030년부터 공공의대·지역의대를 통해 연 200명을 추가 양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초고령화로 인해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사망자가 급증하는 사회 단계인 다사(多死) 사회를 대비할 의료개혁의 해법이 아닌, 국가적 위기 대응 과제를 ‘정치적 보신주의’로 축소한 결과이다. 2024년 이후 2년간 환자와 국민이 의료공백의 고통을 감내하고, 보건의료 노동자가 붕괴 직전 의료현장을 버텨온 대가가 고작 ‘2027년 490명’인가!
이재명 정부가 ‘2,000명 증원’이라는 유산을 떠안고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인력 확충과 의료개혁은 어느 정부라도 수행해야 할 국가과제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갈등을 회피하는 숫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인구와 질병, 지역소멸, 돌봄수요 폭증이라는 국가 리스크를 기준으로 일관된 인력정책과 구조개혁 패키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 장래인구추계가 보여주듯, 65세 이상 비중은 2025년 20%를 돌파했고, 베이비부머가 80대 중반에 진입하는 2038년 전후부터 사망자·중증·만성질환·장기요양 수요가 동시 폭증한다. 의사는 지금 늘려도 전문의로 현장 투입까지 최소 10~12년이 걸린다. 2027년 입학생이 전문의가 되는 시점은 2037년 이후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400명 증원도 막혔왔던 것에 더해, 지금 대폭 증원해도 빠듯한데 정부는 고작 490명으로 적당히 시간을 때우려 한다. 이는 2038년 의료대란 예고편에 다름아니다.
수급추계위원회(이하 추계위) 설치는 과학적 인력수급추계를 요구하는 의료계의 주장을 시민사회와 환자, 노동계가 ‘근거 기반 인력정책’을 위해 수용한 사회적 성과였다. 어렵게 탄생한 추계위는 5개월간 12차례 본회의를 거쳐 2037년 의사 부족 4,724명 등을 포함한 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공급자 측 측이 과반을 차지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코로나·의정갈등으로 강제 축소된 의료이용량을 ‘정상 수요’로 고정하는 조성법이 힘을 얻었다. 이와 함께 실증되지 않은 AI 생산성 가정을 억지로 끼워 넣어 필요 의사 수를 깍아 버렸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추계위의 결과마저도 충실히 반영하지 않았다. 회의를 거치며 모형 조합을 압축하고, 가상의 600명(공공·지역의대)을 미리 빼고, 교육 여건 상한을 적용해 연간 613명(2027년 490명)까지 축소한 과정은 ‘숫자 깎기’의 정치공학에 불과하다. 추계위는 숫자 깎기의 명분을 만드는 기구로 소비되고, 보정심은 정치 리스크를 방어하는 기구로 전락되었다.
또한, 정부는 의대 교육의 질을 명분으로 대학별 증원 상한을 설정하고 2027년엔 증원분의 80%만 선발한다고 했다. 그러나 24, 25학번 의대생 더블링은 집단 이탈이 초래한 결과이며, 정부가 불법과 부당행위에 원칙대로 대응하지 않고 선처만 반복해 공고화된 것이다. 그들이 만든 부담을 이유로 증원을 깎는 것은 본말전도에 불과하다. 의대 교육은 국가 인력정책의 일부다. 여건 부족은 국가투자, 교원확충, 임상교육 인프라, 수련체계 혁신으로 해결할 과제이지, 숫자를 줄이는 핑계가 아니다. 정부는 교육 여건을 ‘삭감 논리’로 쓰지 말고, 투자·책임의 의무계획을 제시해야 했다.
의사 부족과 필수과 기피로 의사 업무는 PA, 간호, 의료기사, 요양·돌봄 인력에게 전가되어 왔다.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PA가 급증했고, 현장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그런데 정부 지원은 지역의사지원센터, 등록금과 실습비 지원, 전공의 수련 지원 등 의사 중심 ‘선물 보따리’가 대부분이다. 의사 업무 전가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인력기준과 업무범위, 팀 기반 진료체계의 인력구조 개편, 의사 업무를 떠안는 보건의료 노동자에 대한 정원과 처우, 안전 대책 등은 부차화되어 있다. 정부는 PA 업무 전가를 해소할 법과 제도와 책임체계를 마련하고, 보건의료 노동자의 처우, 안전, 정원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진료지원간호사 제도를 ‘합리화’가 아니라 책임과 인력기준, 보상 체계를 전제로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는 시니어 의사 활용과 AI 생산성 향상을 출구로 말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는 대체재가 아니라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고령 의사의 임상활동을 미래의 상수처럼 전제해 증원을 줄이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며, 검증되지 않은 AI 생산성으로 필요 인력을 깎는 것은 환자 안전을 담보로 한 실험이다. 특히 의사 부족이 심화된 현실에서 AI가 도입되면, 결정 권한은 병원과 의사에게 남는 반면 데이터 입력과 기록, 설명, 모니터링 등 주변 업무는 간호와 돌봄 인력으로 더 쏠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간호와 돌봄은 인력부족에 따른 병목이 큰데, 의사 부족을 AI로 덮는 순간 병목은 더 심화된다. 정부는 AI 도입 전 환자안전 영향평가와 업무전가, 고용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타 직종의 노동을 불안정화하는 도입 방식을 차단해야 한다.
정부는 지역의사전형으로 9개 도 지역 10년 의무복무를 말하지만, 지역·필수·공공의료는 ‘사람’만이 아니라 ‘기반’의 문제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확대 경쟁이라는 블랙홀을 방치한 채 지역에 인력만 쏟아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의료전달체계 확립, 2차 의료 붕괴 방지, 팀 의료 인프라 강화, 병상수급과 기능재편, 행위별 수가제 개편 등 공급구조 개혁을 증원정책과 동시에 추진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 대해 정부는 시민사회와의 대화와 사회적 합의만 강조할 뿐, 어떠한 대안도 책임성 있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2024년 2월 2,000명 발표 이후 2025년 4,567명, 2026년 3,058명 동결, 2027년 3,548명이라는 2년의 궤적은 정부가 일관된 원칙 없이 정치적 계산에 따라 정책을 오락가락했음만을 보여준다. 의료공백의 비용은 환자와 국민, 병원 노동자가 치렀다. 의사 집단은 추계 결과마저 ‘근거 없다’며 부정하는 이중전략으로 정책 결정을 무력화 했다. 의료개혁을 위해 증원은 필요조건이며,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전달체계 개편, 병상·재정·노동정책과 결합하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무력화된다. 정부는 이 교훈을 ‘갈등 봉합’으로만 정리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490명이다. 이제 밀려 오는 ‘다사(多死) 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구구조에 따른 문제가 폭발할 그때 책임질 사람은 현 정부가 아니란 점만은 분명하고, 현장에 남아있는 보건의료인력과 국민이 전적으로 감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미래 국민들이 겪어야 할 의료사태가 시한폭탄으로도 남아있다.
이제 PA·업무전가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인력기준, 업무범위, 책임체계를 마련하고 보건의료 노동자의 정원과 처우, 안전을 강화해야만 한다. 병상과 전달체계, 2차 의료 강화 등 공급구조 개혁과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지불제도 개편 및 비급여 관리 등 불필요한 의료량 통제방안을 강고하게 재추진해야만 한다. 정부는 무력화된 추계위와 보정심 등 거버넌스를 강도 높게 혁신을 해야 하고, 의사 직종 편중을 넘어 환자 안전건강권과 노동권을 함께 담는 의료개혁 패키지를 제출하라! 국민에게 호소드린다. 오늘의 무책임한 결정을 넘어 의료혁신과 개혁을 큰 소리로 함께 요구해 주시길 바란다. 그것만이 다가올 인구절벽과 다사(多死) 사회의 위기에 대응할 유일한 방안이다.
2026년 2월 11일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