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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설을 의심하고 교과서위주 교육을 찢어야 챗GPT, 날카롭고 유효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가사가 이렇게 와닿는 때는 없었다. 불안과 우울이 범벅이 되어, 나의 뇌를 갉아먹고, 꿈속에서도 나는 부들부들 떨고 흐느낀다. 구세주 돈은 들어오지 않고, 아 이생망이다.

영재 소리한번 듣지 못하고 3류대를 나왔고 수재가 아닌 필자가 이런글을 쓰기가 보통 용기를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읽기 바란다.

교과서 위주의 공교육이 가져오는 폐단은 심각하다. 생각을 하지 않고 암기하는 교육이 정말 타당한지는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 교육이란게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교과서위주의 암기 위주의 교육은 썩어빠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관성이다. 얼음판에서 힘을 더 주지 않아도 미끄러지는 것이 관성탓이고,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면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도 관성탓이라고 하는게 진실일까.

그럼 현실적으로 달리는 차가 시동을 끄면 얼마나 더 앞으로 갈지를 우린 측정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관성의 힘을 측정하려고 한다면 크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한번 이러게 생각해보자. 앞으로 나가게 하는 미는 힘을 엄청나게 잘게 쪼개어, 한번만 때린다고 생각해보자. 마치 팽이치기 하듯이 말이다. 그러면 만약 세게 때리면 물체는 한참 멀리 계속 가게 된다.
반면에 약하게 때리면 조금난 나가게 된다. 그래서 많이 나가고 적게 나가고는 때리는 힘에 달려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버스도 계속 때리는 것이다. 한번 때리고, 나가고 있는 순간에 또한번 때려서 나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승객들도 계속 두들겨맞는다.

만약 때리는 것을 멈추어도, 관성때문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즉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져가는 것은 관성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소모되는 과정이다.

만약 외부힘이 없다면, 처음 가속힘이 세건 약하건 끝없이 나아갈 것이란 생각은 참으로 비현실적인 가상이다. 이 유공간에 외부힘이 없는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간이란 의미가 업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무관하게 이동하는 소모힘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해보라. 이에 대해 챗혰는 틀렸다고라기보단, 날카롭고 유효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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