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가 어제(7일) 대한의사협회 회장,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 등과 비공개 만찬 회동을 가졌고,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 방안을 포함해 의정갈등 해소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한 새 정부가 의료계를 만나 목소리를 청취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새 정부가 지난 윤석열 정부의 실패한 의료정원 정책과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의 최대 피해 당사자인 환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상황에서, 1년 5개월간 이어오고 있는 의료공백 사태의 원인을 평가하고 해결방안 및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칫 환자·국민의 정서나 상식에 반하는 결정이나 합의가 이루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도 있다.
의대정원 관련 의정갈등으로 의료공백 사태는 1년 5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아무 잘못 없는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역시 의정갈등 해소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약 1만 명의 전공의가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방식으로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과 같은 생명과 직결된 진료과에서 집단사직하면서, 중증질환 및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의 투병의지를 꺾었고, 응급환자는 ‘응급실 뺑뺑이’에 노출되었다. 환자들은 실제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환자가족들은 울분을 삼키며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비윤리적·반인권적 행태를 우리나라 전 국민이 지켜보았고, 이제는 국제사회에도 알려졌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공급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의료개혁 추진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해 환자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 마련하고, 환자의 건강권 보호, 투병 및 권익 증진을 위한 체계적 정책을 확립하겠다.”고 공약했고, 당선되었다.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 출범 이후 당연히 의정갈등과 의료공백 문제는 환자 중심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김민식 국무총리와 의료계 대표 간 회동의 핵심이 전공의·의대생의 복귀 조건에 있으며, 여기에는 수련·학사 관련 특혜성 조치도 포함될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전공의·의대생은 집단행동이 아닌 자발적 사직·휴학이라고 주장하며 1년 5개월간 의료현장과 교육현장을 떠나 있었다. 그 사이 국민·환자는 큰 고통과 피해를 겪었다. 의대 정원도 사실상 원상 복귀된 상황에, 복귀를 전제로 한 특혜성 조치를 요구하는 전공의·의대생의 행태도 문제지만, 이를 수용하는 듯한 정부 관계자와 일부 정치인의 행보가 더 심각한 문제다. 전공의·의대생은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으로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 전공의·의대생은 1년 5개월 전 자신들은 자발적으로 사직·휴학했다는 이유로 정부는 개입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새 정부에서도 자발적으로 사직·휴학한 전공의·의대생의 복귀는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전공의·의대생에 대해서만 여타 전문직 종사자나 대학생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특혜성 조치를 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상식적이고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 전공의·의대생 복귀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 특혜라고 인식될 수 있는 예외적 조치를 새 정부가 하면 안된다. 정부의 이러한 특혜성 조치는 먼저 자발적으로 복귀한 전공의·의대생이 앞으로 겪을 피해를 고려하면 정부에 의한 2차 가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환자를 위해 돌아온 전공의·의대생이 아닌, 끝까지 복귀하지 않다가 정부의 특혜성 조치에 기대어 돌아온 전공의·의대생이 오히려 더 우대받는다면, 이는 정의와 상식에도 반하다. 새 정부는 이러한 모순된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1년 5개월 동안 의료공백 사태를 겪은 환자들은 의료계와 정부 모두에 환자들의 생명을 지켜줄 거라는 신뢰를 잃었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방법으로 환자들 간에, 환자단체들 간에 치료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응원하며 견디며, 지금까지 버텨 왔다. 이런 경험을 통해 환자들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환자 중심’이 아닌 ‘의사 중심’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우리나라에는 환자의 투병과 권익 증진을 위한 법적 체계도, 정부 조직도, 통합적인 지원기관도 없다는 현실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는 보건의료 환경이 환자 중심적이지 않을 때 국민·환자가 어떤 고통과 피해를 겪는지 경험하게 했다.
이에 환자단체들은 환자가 잘 치료받도록 하고, 환자의 권리가 잘 지켜지도록 하는 제정과 보건복지부 조직 내 환자정책과, 환자안전과, 환자피해구제과 등을 포함하는 신설과 환자의 투병, 사회복지, 정서적 지지, 사회복귀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설립을 하나의 묶음으로 국정과제에 포함해 달라고 국정기획위원회에 찾아가 의견서도 전달했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접수했다.
의료는 특권이 아닌,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헌법과 법률이 의사 면허를 가진 의사에게 부여한 권한이자 책임이다. 환자 없는 의료는 존재할 수 없다. 새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처럼 ‘환자 중심 의료개혁’을 반드시 실현하고, 의정갈등에 의한 의료공백 사태의 최대 피해 당사자인 환자에게도 1년 5개월 동안 겪은 환자 경험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입법적 의견을 전달할 기회를 주기 바란다.
2025년 7월 7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 한국파킨슨희망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