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큰일 났어요! 어르신이 집에 가시겠다고 난리예요!"
새벽의 요양원.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에 갑자기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아니, 지금 몇 시인데 집에 가신다는 거예요. 밖은 깜깜하고 날씨도 추운데요."
"그러니까요.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아침에 밝으면 모셔다드리겠다고요."
"내 집에 내가 가겠다는데 왜 못 가게 해! 당신들이 뭔데 나를 가둬놔!"
어르신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요양보호사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르신, 여기가 어르신 댁처럼 편안하게 지내시는 곳이에요. 지금 나가시면 위험해요. 조금만 주무시고 아침에 이야기해요."
"뭐라고? 내가 내 집에 가겠다는데!"
"어르신, 진정하세요. 저희도 어르신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옆에 있던 요양보호사가 거들었다.
"선생님, 일단 다른 선생님 불러요. 지금 너무 흥분하셨어요."
"그러게요. 그런데 지금 혼자 나가시면 큰일 나잖아요."
그때였다.
어르신이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어르신! 그거 내려놓으세요!"
"내려놓으라고? 당신들이 뭔데!"
순식간에 소화기 분말이 복도를 뒤덮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얀 가루가 퍼졌다. 요양보호사들은 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이고, 눈이야! 선생님, 괜찮아요?"
"저리 피하세요! 어르신, 그만하세요!"
"이러다가 우리까지 다치겠어요!"
어르신은 소화기를 난사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요양보호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르신이 집에 가겠다고 하니 그냥 문을 열어드려야 할까? 새벽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 길을 잃거나 사고라도 당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다고 붙잡으면 인권침해인가? 붙잡지 않으면 방임인가? 설득하다가 폭행을 당하면 그것은 요양보호사의 직업적 사명인가?
어쩌면 요양보호사들은 그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소화기까지 맞아야 해?"
"그러게. 어르신이 불안정하신 건 알겠는데 우리도 사람 아니야?"
"그런데 우리가 어르신을 제지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또 우리 책임이라고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어르신 인권도 중요하지만 우리 안전도 중요하잖아."
물론 이것은 실제 사건의 대화를 옮긴 것이 아니라 현장 종사자들의 처지를 상상해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는 딜레마만큼은 결코 소설이 아니다.
도대체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인가, 아니면 어르신의 어떤 행동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인가?
요양원에는 학대하는 사람만 있고, 공격당하는 사람은 없는가?
우리 사회에서 요양원 관련 사건이 보도되면 대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을 때렸다거나, 거칠게 다뤘다거나, 식사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면 언론은 연일 이를 다룬다. 국민들도 분노하고 관계기관은 조사에 나선다.
당연한 일이다. 노인학대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돌봄 종사자가 어르신을 학대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왜 우리는 반대 방향의 사건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가?
어르신이 요양보호사를 때리고, 물고, 할퀴고, 물건을 던지고, 심지어 소화기까지 난사하는 일은 왜 그렇게 큰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하는가?
혹시 우리 사회가 이미 하나의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요양원에는 약자인 노인이 있고, 그 노인을 괴롭히는 강자인 종사자가 있다는 구도 말이다.
마치 개가 사람을 물면 개가 그럴 수도 있다며 넘어가지만,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는 식의 이야기다.
물론 노인과 개를 동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론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극적인 시각과 사회적 관심의 비대칭을 비유한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회의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다른 사람의 피해를 외면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신과 의사도 환자에게 공격당한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공격당했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의사도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지 폭력을 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환자의 정신건강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이 폭력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요양보호사는 어떠한가?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재가 요양보호사들도 비슷한 위험을 경험한다.
갑자기 손가락을 물리는 일도 있고, 팔을 꼬집히거나 할퀴는 일도 있다. 평소에는 온순하던 어르신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람을 대하듯 경계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를 도둑으로 오해하고, 어떤 어르신은 집에 가겠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한다. 배회하려는 어르신을 보호하려다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요양보호사는 의사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르신을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르신의 안전과 자신의 안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종사자에게 돌아오는 말은 무엇일까?
"어르신이 치매라서 그러신 거니까 이해하세요."
물론 이해해야 한다. 치매로 인한 공격행동은 질병의 증상일 수 있다. 고의적인 폭행과 구별해야 하며, 처벌보다 의료적 평가와 적절한 돌봄 대응이 우선되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맞아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치매라는 이유로 어르신을 비난하지 않는 것과, 치매라는 이유로 요양보호사의 피해를 없는 일처럼 취급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인권이라는 이름의 일방통행
우리 사회는 인권을 이야기할 때 대개 보호받아야 할 사람부터 떠올린다.
노인 인권, 장애인 인권, 환자 인권, 아동 인권. 모두 중요하다.
그런데 노동자의 안전권은 어디에 있는가?
요양보호사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녀이며, 퇴근하면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도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폭언과 폭행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적절한 지원을 요청할 권리도 있다.
어르신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요양보호사에게 무조건 참고 견디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권의 확대가 아니라 인권의 편식이다.
어르신이 새벽에 집에 가겠다고 하면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반복적인 공격행동이 나타나면 의료진의 평가와 전문적인 대응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종사자가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인력과 보호장비, 교육과 지원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종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
요양보호사에게도 방패가 필요하다
우리는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 들어갈 때 방화복과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경찰관에게도 방패와 보호장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왜 요양보호사에게는 그런 기본적인 안전 개념이 낯설게 느껴질까?
물론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을 제압하기 위한 무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공격행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위험을 평가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다른 종사자와 즉시 협력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양원에서 반복적으로 공격행동을 보이는 입소자가 있다면 그 원인을 살피고, 적절한 치료와 환경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 재가 현장에서도 요양보호사가 위험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가족과 기관, 의료기관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
어르신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하려면 돌보는 사람부터 안전해야 한다.
다친 요양보호사에게 어떻게 더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권은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어르신의 인권은 소중하고 요양보호사의 안전은 덜 소중한가?
어르신이 약자라는 사실은 요양보호사가 무조건 강자라는 뜻인가?
노인학대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동시에 돌봄 종사자에 대한 폭력도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인권은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도구가 아니다. 서로의 존엄과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르신을 보호하는 일과 요양보호사를 보호하는 일은 서로 경쟁하는 사업이 아니다.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돌봄이라고 할 수 있다.
소화기를 난사한 어르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끝내서도 안 된다. 그 어르신에게 왜 그런 행동이 나타났는지 살펴야 하고, 동시에 그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쓰며 현장을 수습했을 요양보호사들의 안전도 살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노인 인권을 걱정한다면 요양보호사의 인권도 함께 걱정해야 한다.
어르신을 돌보는 사람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회에서 과연 좋은 돌봄이 가능하겠는가?
이제는 요양보호사에게 어르신을 잘 돌보라고만 주문할 것이 아니라, 요양보호사도 안전하게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르신의 인권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인권을 지키는 사람의 안전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인권이라면, 우리는 그 인권의 의미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