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 당시 한국의 정치와 군사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빼놓고 역사를 설명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미국으로 돌릴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접근하면 정작 우리가 책임을 물어야 할 당사자의 책임이 희석될 수 있다.
5·18의 경우 더욱 그렇다.
5·18민주화운동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외교적 태도나 한미관계, 당시 미국의 정보와 판단을 연구할 수는 있다. 미국이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어떤 판단을 했으며 당시 한국 군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그것과 5·18의 직접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느냐는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고,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문제의 직접적인 책임 주체를 미국으로 바꿔버린다면 역사의 중심이 뒤바뀐다.
전두환과 신군부의 책임을 묻는 것과 미국의 외교적 책임을 따지는 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하지만 두 가지를 뒤섞어서는 안 된다.
책임에는 층위가 있다
역사적 사건에는 여러 종류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
직접 명령하고 실행한 책임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묵인하거나 제대로 막지 못한 책임이 있을 수 있으며, 훨씬 넓게는 그러한 정치적 환경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 책임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모두 똑같은 의미의 '책임'이라고 부르면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고 하자.
폭력을 행사한 사람과 그것을 막지 못한 사람의 책임이 같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옆 사람이 사전에 폭력을 부추겼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행위와 증거를 따져야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당시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과 “5·18의 책임자가 미국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다.
이 구별이 필요하다.
6·25도 마찬가지다
6·25전쟁은 더욱 기본적인 사실부터 확인해야 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전면적인 남침을 시작했다는 것이 현재의 역사적 사실관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북한 공산군이 38선 전역에서 전면 남침을 개시했고,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이를 무력공격이자 침략행위로 규정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물론 여기에도 국제정치적 배경은 있었다.
소련과 중국, 미국의 냉전정책이 있었고 한반도는 미·소 냉전의 최전선이 됐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관여했고 전쟁 이후 엄청난 규모의 군사적 개입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남침이라는 전쟁 발발의 직접적 사실까지 미국의 책임으로 바꾸어 말할 수는 없다.
전쟁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과 전쟁을 미국이 시작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 것을 비판하는 것과 북한의 남침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것도 구별해야 한다.
이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역사적 인과관계가 뒤집힌다.
미국을 비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비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역시 하나의 국가이고, 자신의 국익을 위해 행동하는 국가다.
따라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
특히 최근 트럼프 정부가 보여주는 미국 우선주의와 과도한 자국 이익 중심 정책에 대해서는 한국이 충분히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방위비 문제도 그렇고 무역 문제도 그렇고, 관세 문제도 그렇고, 동맹국에 대한 요구가 과도하다고 판단한다면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다.
동맹은 주종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의 원인을 무조건 미국에서 찾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면 편하다
사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편하다.
경제가 어려우면 미국 때문이라고 한다.
집값이 오르면 미국 때문이라고 한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면 미국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미국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갈등이 심해져도 미국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정책을 잘못했는지,
정치를 잘못했는지,
경제구조에 문제가 있는지,
정부가 판단을 잘못했는지,
우리 사회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갈등을 방치했는지는 묻지 않게 된다.
이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 소재를 정확하게 따지는 태도의 문제다.
미국을 비판할수록 더 정확해야 한다
나는 오히려 미국을 비판하려면 더 정확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충분히 지지하지 못했다면 그 부분을 따지면 된다.
당시 한국 군부에 대한 미국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판단을 분석하면 된다.
미국이 한국에 경제적·군사적 압력을 행사했다면 그 사례를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구체적인 분석을 건너뛰고
“결국 미국 때문이다.”
라고 해버리면 오히려 미국에 대한 비판의 설득력까지 떨어진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조금만 자료를 찾아보면 틀린 부분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틀린 결론만이 아니다.
맞는 문제제기에 틀린 인과관계를 붙이는 것이다.
비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비자 문제를 놓고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2026년 들어 한국인의 미국 비자 발급 지연과 관련한 사례들이 보도됐다.
예를 들어 10월에는 국정원 파견 예정 직원 일부의 미국 비자가 지연돼 한미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고, 국정원은 이를 미국의 강화된 입국 절차에 따른 개인 신상 관련 비자 프로세스 문제라고 설명하면서 한미 정보협력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정청래 국회의원의 미국 비자 발급이 지연되면서 당초 예정했던 미국 국정감사 일정을 변경했다는 사례도 보도됐다. 다만 이 사례 역시 미국 측의 구체적인 지연 사유가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최근 한국인의 미국 비자가 예전보다 잘 나오지 않는다”는 문제제기 자체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미국 정부에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인만 미국에서 차별받고 있다.”
또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보복이다.”
라고 단정하려면 훨씬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
현재 공개된 미국 국무부 자료만 놓고 보면 그런 결론을 쉽게 내리기 어렵다.
한국인의 미국 비자 거부율이 실제로 높아졌다는 자료는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공식 자료다.
미국 국무부의 2025회계연도 B비자 조정 거부율 자료를 보면 한국 국적자의 비율은 **24.73%**로 나타난다. 2024회계연도에는 **14.97%**였다. 따라서 최근 수치만 놓고 보면 전년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 숫자는 가볍게 볼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어볼 수 있다.
왜 높아졌는가?
미국의 심사 강화 때문인가?
신청자의 구성 변화 때문인가?
특정 비자 유형의 신청이 늘었기 때문인가?
심사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인가?
행정처리가 늦어진 것인가?
아니면 한국만의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것을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주의점이 있다.
미국 국무부가 공개하는 B비자 조정 거부율은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과 관련된 통계 산식이다. 미국 국무부 스스로도 비자면제프로그램 국가의 거부율은 실제 무비자 입국자를 계산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가별 비자 거부율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한국의 미국 비자 거부율이 24.73%이니 미국이 한국인을 차별한다.”
라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통계 해석으로도 지나치다.
미국만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더구나 '비자가 잘 안 나온다'는 말에는 서로 다른 문제가 섞여 있을 수 있다.
비자 거부와 발급 지연은 다르다.
면접 예약이 늦어지는 것과 심사에서 탈락하는 것도 다르다.
추가 행정심사가 길어지는 것과 자격요건 미충족도 다르다.
미국 국무부는 현재 비자 신청자의 자격 여부, 신청 비자 종류, 제출 정보, 법률상 결격 사유 등을 종합해 개별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비이민비자의 경우 미국 이민법 214(b)에 따라 신청자가 비자 자격과 미국 체류 후 귀국 의사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면 거부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또 현재 미국 국무부의 세계 비자 대기시간 자료를 보면 서울의 B1/B2 면접 예약 대기시간은 2026년 10월 기준 0.5개월 미만으로 표시돼 있다. 반면 일부 다른 지역은 훨씬 긴 대기시간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한국인만 유독 미국 비자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일반화할 근거는 현재 자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에 질문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한국인의 비자 발급이 실제로 지연되고 있다면 한국 정부는 미국에 당당하게 질문해야 한다.
왜 지연되는가.
과거보다 심사기준이 달라졌는가.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새로운 절차가 있는가.
행정심사가 길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인의 비자 발급률과 다른 주요 동맹국 국민의 발급률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가.
이런 것을 자료로 요구하면 된다.
그것이 외교다.
감정적으로
“미국이 우리를 무시한다.”
라고 외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미국도 자기 이익을 챙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미국도 미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한국도 한국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자국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미국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했는지만 바라보게 된다.
정작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정책을 잘했는가.
외교를 잘했는가.
경제구조를 제대로 만들었는가.
안보를 제대로 준비했는가.
국민에게 필요한 제도를 제대로 만들었는가.
이런 질문들이 사라진다.
역사를 제대로 보는 것은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5·18의 책임을 전두환과 신군부에 묻는다고 해서 미국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6·25전쟁의 발발 책임을 북한의 남침에서 찾는다고 해서 미국의 냉전정책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잘못을 지적한다고 해서 북한이나 국내 정치세력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책임을 각자의 크기와 근거에 따라 따지는 것이 역사다.
나는 오히려 이것이 훨씬 더 성숙한 역사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의 책임은 전두환에게, 신군부의 책임은 신군부에게, 북한의 남침 책임은 북한에, 미국의 정책적 책임은 미국에 묻는 것.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모든 것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책임을 지우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미국부터 바라보는 습관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할 일이 별로 없다.
미국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 교육, 부동산, 노동, 복지, 저출산, 청년 일자리 문제에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수많은 요인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해결책도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미국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미국에 따지면 된다.
그러나 미국이 하지 않은 일까지 미국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미국을 비판하는 것과 미국 탓을 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책임을 묻는 것이지만, 후자는 때때로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인의 미국 비자 발급 지연이나 거부율 상승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자료를 가지고 따져야 할 문제다. 실제로 최근 비자 지연 사례가 있었고, 공식 통계에서도 한국 국적자의 B비자 조정 거부율이 2024년보다 2025년에 높아진 것은 확인된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미국만의 한국 차별”**이라는 결론을 뜻하지는 않는다.
결국 필요한 것은 반미도 친미도 아니다.
사실에 따라 책임을 나누어 묻는 태도다.
역사는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정확히 구별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5·18에도, 6·25에도, 오늘의 한미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