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오늘 정부의 탈모 치료제 급여화 공론화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이재명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이 탈모 치료 중심에서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과 암질환 치료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기 위해 청와대 앞에 모였다.
정부는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범위를 국민참여형 숙의 토론 의제로 올렸다. 행정안전부는 오는 7월 4일 ‘모두의 토론회’ 첫 번째 의제로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다루겠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도 탈모 치료제 급여화 방식과 대상, 재정 소요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 논쟁은 작년 12월 16일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본격화되었다. 대통령은 “탈모가 과거에는 미용의 문제로 인식되었지만, 최근에는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면 횟수나 총액을 제한하는 방식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 재정 소요를 따져보고, 건강보험료를 내는 탈모 치료제 사용자에게도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탈모로 인해 심리적 고통과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탈모 당사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도 않는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내는 만큼, 정부가 탈모 치료제 급여화 여부를 사회적으로 숙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탈모로 인한 고통을 인정하는 것과 정부가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유전성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투입하는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 똑같이 혜택을 돌려주는 환급제도가 아니다. 건강할 때 함께 부담하고, 질병과 의료비 부담이 큰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를 우선 보장하는 사회보험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급여화는 국민적 관심도나 정치적 요구만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의학적 필요성,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경제적 부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다른 미충족 의료수요와의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여전히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암·희귀질환·심혈관질환·뇌혈관질환과 같은 중증질환 환자들은 여전히 높은 비급여 부담과 치료 접근성 문제를 겪고 있다. 신약이 허가되어도 경제적 능력이 되는 환자는 고액의 비급여 약값을 내고 치료받지만, 약값을 감당할 수 없는 환자는 생명 연장의 기회를 잃고 있다. 살 수 있는 약이 있는데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은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 결코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오늘, 이 기자회견에는 희소질환인 KT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으로 투병 중인 아들의 엄마인 한국PROS환자단체 서이슬 대표가 함께했다. 희소질환 환자와 가족은 진단 지연, 치료제 부족, 비급여 부담, 돌봄 부담을 동시에 견디고 있다. 이들에게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삶의 질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확장기 소세포폐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해 임델트라(성분명: 탈라타맙)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요청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제기한 딸 허지형 씨도 참석했다. 이 청원은 52,647명의 동의를 받아 2026년 6월 11일 상임위원회에 자동 회부되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두 차례 이상 항암제 치료에 실패한 재발 또는 불응성 소세포폐암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이는 중증 암환자와 가족들이 신약 접근성 문제를 얼마나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에 묻는다.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를 기다리다 치료 기회를 놓치는 암환자가 있고, 희소질환 환자와 가족은 비급여와 돌봄 부담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유전성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투입하는 것이 과연 맞는 순서인가? 우리는 숙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우선순위를 중증질환과 암질환 중심으로 바로잡자는 것이다.
청년 탈모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공감한다. 그러나 청년층의 탈모 치료비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보험 재정보다는 별도의 국고 지원 방식으로 검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청년정책은 청년정책답게, 사회정책은 사회정책답게 국고로 추진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치료에 우선 사용되어야 한다.
현재 ‘4대 중증질환’과 ‘암질환’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충분하지 않다. 「건강보험 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21년 64.5%, 2024년 64.9%로 60%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고액 의료비 부담이 큰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이 2021년 84.0%에서 2024년 81.0%로 3%p 하락했고, 암질환 보장률은 같은 기간인 2021년 80.2%에서 2024년 75.0%로 5.2%p나 크게 하락했다는 점이다. 보장률 현황만 보더라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가장 절실한 영역이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에서 암환자와 암질환 보장성 확대가 정책 우선순위에 놓여 있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이미 암경험자 100만 명 시대에 들어섰고,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 기준 암유병자는 273만 2,906명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는 암질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나 항암제의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 과제에 의료적 필요성이 크고 비용효과성이 입증된 비급여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암환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항암제 접근성 개선과 암질환 보장성 확대 정책은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정부는 탈모 치료제 급여화 숙의 과정이 이미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는 절차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급여 대상, 기준, 약제 범위, 본인부담률, 예상 이용자 수, 재정 소요 규모를 먼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우선순위를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2021년 이후 하락한 ‘4대 중증질환’과 ‘암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다시 끌어올릴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암환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암질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조속히 발표해야 한다. 고가 항암제와 생명 직결 치료제의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 급여 지연 해소, 환자 접근성 개선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넷째, 정부가 청년층 유전성 탈모 문제를 지원하려 한다면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별도의 국고 재정으로 추진해야 한다. 사회정책은 국고로 추진하고, 건강보험 재정은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의학적 필요성이 높은 치료에 우선 사용해야 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우리는 숙의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 우리는 탈모 환자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중증질환 치료에 우선 쓰여야 한다.
정부는 탈모 치료제 급여화 논의를 계기로 이재명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국민 앞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암·희귀질환·심혈관질환·뇌혈관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을 즉시 추진해야 한다.
2026년 6월 29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