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노인의학을 대표하는 대한노인병학회·대한노인의학세부전문의연합학회·대한임상노인학회는 17일 '초고령사회 노인 호흡권 보장을 위한 공동 정책 제안서'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 전달하고, 고령층의 호흡기 건강을 위한 치료·예방 환경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만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여 명(전체 인구의 약 20%)에 도달하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인구 5명 중 1명이 고령층인 상황에서 개인의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커짐에 따라, 고령층이 비용 때문에 필요한 치료와 예방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호흡권 보장'이 국가적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 2025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국내 66세 이상 은퇴연령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으며, 75세 이상 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이처럼 형편이 어려운 고령층에게 비급여 치료비와 예방접종 비용의 본인 부담은 곧 치료와 예방 포기로 이어져 생명과 직결되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와 같은 취약성은 중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치료와 인플루엔자(독감)·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의 예방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고령층은 심혈관질환, 당뇨 등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는 경우가 많아서 호흡기 질환이 기저질환의 동반 악화를 촉발하는 등 급격한 중증화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에 노인의학 3개 전문학회는 노인 호흡기 건강의 치료와 예방을 아우르는 3대 핵심 과제로 ▲반복적 급성 악화를 겪는 고위험 COPD 환자의 치료 접근성 및 보장성 강화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의 질적 전환 ▲75세 이상 및 50~74세 고위험군 대상 RSV 예방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n 반복적 급성 악화를 겪는 고위험 COPD 환자의 치료 접근성 및 보장성 강화
COPD는 고령층에서 유병률이 크게 증가하는 대표적인 만성 호흡기질환으로, 인구 고령화에 따라 질병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만 56세·66세를 대상으로 국가건강검진에 폐기능검사를 도입해 COPD 조기 진단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나, 급성 악화 위험이 높은 중증 환자의 치료 접근성에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특히 급성 악화가 반복될 때마다 폐 기능이 저하되며, 한 번 손상된 폐는 회복되지 않는다. 급성 악화를 세 차례 이상 겪은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사망 위험이 4.13배 높으며 , 응급실 방문이나 입원이 필요한 악화를 경험한 환자는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중대한 심혈관 사건 발생 위험도 6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GOLD 2026 등 국제 진료지침은 LABA·LAMA·ICS 삼제 흡입치료 등 적정 표준치료에도 중등도 또는 중증 급성 악화가 지속되고, 혈중 호산구 수치 등 임상적 적응 기준을 충족하는 환자에서 생물학적제제를 고려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에 학회는 생물학적제제의 국내 허가사항,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및 예산영향을 평가하여 적정 환자군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연간 반복 입원, 장기산소치료, 고도 폐 기능 저하 등 객관적 기준을 충족하는 최중증 COPD 환자의 의료비 부담 실태와 재정영향을 조사하고, 본인부담 경감제도 또는 산정특례 적용의 타당성을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
학회는 급성 악화 예방이 응급실 방문과 입원, 간병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 임상적 효과와 함께 사회경제적 편익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n 실질적 예방 효과 확보 위한 '고면역원성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시범사업 및 단계적 NIP 도입'
고령층은 나이가 들수록 면역 체계가 약화되는 ‘면역 노화’로 인해 인플루엔자(독감) 감염 시 폐렴 등 합병증과 기저질환 악화 위험이 높다. 실제 2024-2025절기 인플루엔자 입원환자 중 65세 이상이 52.4%를 차지했다.
학회는 표준용량 백신 중심의 현행 NIP가 중증·입원·사망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령층에서는 면역 노화로 인해 백신의 감염 예방효과가 연령과 유행주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높은 접종률을 유지하면서 고령층의 면역학적 특성을 반영해 중증화 예방효과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학회는 75세 이상 고령자와 65~74세 중 중증화 위험이 높은 기저질환자를 우선 대상으로 고면역원성 인플루엔자 백신의 비용효과성과 예산영향을 평가하고, 시범사업을 거쳐 단계적으로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n 75세 이상 및 50~74세 고위험군 대상 RSV 예방 체계 구축
RSV는 만성 호흡기질환을 보유한 고령층이 감염될 경우 중증 폐렴 등 합병증과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심장이나 폐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에서는 RSV 감염이 기존 질환을 급격히 악화시켜 입원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내 전문학회는 75세 이상 성인과 50~74세 중 중증 RSV 감염 고위험군에게 RSV 백신 1회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학회는 이러한 접종 권고에도 불구하고 성인용 RSV 백신은 NIP에 들어가 있지 않아, 소득 수준에 따라 접근성 격차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학회는 75세 이상 성인과 50~74세 중 만성 심폐질환, 면역저하, 당뇨병, 요양시설 거주 등 중증 RSV 감염 고위험군을 우선 대상으로 국가 지원을 시작하고, 국내 질병부담과 비용효과성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대한노인병학회 한성호 회장(동아대학교의료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의 호흡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질환이 발생한 뒤의 치료뿐 아니라 중증화를 예방하는 체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며 “반복적인 급성 악화를 겪는 COPD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고령층의 위험도와 면역 특성을 반영한 인플루엔자·RSV 예방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 여건 때문에 필요한 치료와 예방의 기회를 놓치는 고령자가 없도록, 이번 공동 제안을 근거 중심의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대한노인의학세부전문의연합학회 김록권 회장은 “고령층은 심혈관질환·당뇨 등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는 경우가 많아 호흡기 건강이 악화되면 하나의 질환에 그치지 않고 기존 기저질환의 악화와 전신 건강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초고령사회에서는 개별 질환을 각각 치료하는 데 머무르기보다 고령층의 복합적인 건강 상태를 고려해 치료와 예방을 함께 연결하는 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정책제안은 노인의 호흡기 건강을 특정 진료과나 하나의 질환만의 문제가 아닌 노인의 전반적인 건강과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로 바라보고, 이에 걸맞은 국가 차원의 관리체계를 마련하자는 노인의학 전문가들의 공통된 제언”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임상노인학회 이상현 회장(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고령층은 면역 노화와 기저질환으로 호흡기질환의 중증화 위험은 높은 반면, 은퇴 이후 소득 감소 등으로 치료비와 예방접종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라며 “효과적인 치료와 예방 수단이 있음에도 비용 부담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면 초고령사회에서 의료 접근성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증 COPD 치료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고령층의 특성을 반영한 인플루엔자·RSV 예방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단순한 의료 지원을 넘어, 고령층에게 필요한 치료와 예방을 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대한노인병학회·대한노인의학세부전문의연합학회·대한임상노인학회는 노인의학의 발전과 고령층의 건강 증진을 위해 진료·교육·연구 및 정책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학술단체다. 대한노인병학회는 노인병학 분야의 진료·교육·연구 발전과 국민보건 향상을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대한노인의학세부전문의연합학회는 다양한 전문과목의 협력을 바탕으로 노인의학 전문성 강화와 노인의료 정책 발전, 교육·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대한임상노인학회는 노인질환의 예방·치료·관리를 비롯해 노인의료와 돌봄에 대한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