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증질환연합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연명의료 중단 및 유보 시기를 기존 ‘임종기’에서 ‘말기 환자’ 단계로 확대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온라인 등록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본 단체들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고통받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인간다운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취지, 즉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큰 틀의 방향성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말기 암 환자 등 오랜 투병으로 심신이 지친 환자와 가족들에게 치료의 연장이 아닌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기에 부여한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현장의 중증 환자들과 암 환자 가족들은 이번 개정안이 가져올 법적·의료적 혼선과 잠재적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정부가 제도를 본격 시행하기 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세 가지 핵심 과제로 제안합니다.
[우리의 요구 및 제언]
첫째, ‘말기 환자’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의학적 판단 기준을 확립해야 합니다.
기존의 ‘임종기(수일 내 사망 가능성이 높은 상태)’와 달리, ‘말기(수개월 이상 연명이 예상되는 상태)’는 예측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의사나 의료기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자칫 의료 현장에서 연명의료 중단 시점을 두고 의료진과 가족 간의 갈등이 발생하거나, 치료 가능한 환자가 조기에 치료를 포기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질환별로 정교하고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명확히 제시되어야 합니다.
둘째, 온라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에 따른 부작용 방지 대책이 시급합니다.
편의성을 증진하기 위한 온라인 등록 도입은 환영하나, 연명의료 중단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엄중한 결정입니다. 비대면 등록 과정에서 환자가 제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주변의 강요나 심리적 위축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작성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고 철회에 대한 절차도 도입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온라인 등록 시 전문 상담원과의 화상 상담을 의무화하거나, 단계별 필수 교육 영상을 시청하도록 하는 등 철저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셋째,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의 획기적 확충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말기 환자들이 고통 없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완화치료와 돌봄 서비스가 필수적입니다. 현재도 턱없이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과 전문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제도적 기준만 낮추는 것은, 환자들을 사각지대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제도 확대'에 걸맞은 '돌봄 인프라 예산 증액'을 즉각 실현해야 합니다.
넷째, '치료 기회 상실' 등 의료비 절감과 병상 회전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부작용을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명목하에 연명의료 결정 기준이 확대되지만, 자칫 의료 현장에서 이를 악용해 더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들의 치료 기회가 박탈당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과거 코로나19 시기 병상 부족 사태 속에서 중증 환자들이 겪었던 비극적인 경험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인해 경제적 취약계층의 비자발적 치료 포기 위험을 방지하고 자칫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받을 권리가 위협당하지 않도록 다중의 안전장치를 갖출 것을 요구합니다. 생명이 경제적 논리나 현장의 편의성 때문에 조기에 포기되는 일이 없도록 법적·제도적 방비책을 촘촘히 구축해야 합니다.
생명의 존엄함은 효율성이나 편의성만으로 재단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이번 입법예고 기간 동안 환자 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의료계의 현장 목소리를 적극 수렴하여, 법이 가지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확대 취지가 왜곡 없이 구현되도록 보완책을 반드시 마련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합니다.
2026년 6월 11일
한국중증질환연합회(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한국폐암환우회/한국뇌전증환우회/한국식도암환우회/한국췌장암한우회/한국직장대장암환우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