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진보들은 반공의 시장 질서를 깨기 위해, 실리주의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엔, 가치 추구대신 가격을 추구하는 현시장질서에 오히려 그건 독이 되고 있지 않나 말한다. 청년들이 그냔 쉬고 있을땐,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한다. 돈을 위해서 뭐든지 하라는 식이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정의와 평등,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진보들이 오히려 돈이라면 뭐든지 하라는 식의 말로 전도되니 말이다.
돈은 가치에 따라오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가치를 증식시키기에 일하고 여기에 공정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사이비 진보들이야말로 자신의 권력과 금욕을 위해 뭐든지 하는 세력이다. 그들은 이념과 사상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권력을 잡는 것인데, 성경을 도구로 돈을 벌려는 사이비 종교인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니 사이비 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교회를 찾아가는 일도 하고 있다. 종교도 자신의 권력과 돈을 위해 도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실리주의 외친다. 국민들 가가자는 고금리나 투기 등 약탈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치는데, 윤리나 명분도 집어던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실리주의는 바뀌어어야 한다. 상호실리주의로 일방적인 실리주의 추구를 대체해야 한다. 거래는 원래 쌍방의 이기이 있을때 성사되는 것이다. 외교도 이제 실리주의 외교를 던지고 공정한고 상호이익을 증진시키는 새로운 이념이 들어서야 할 때다.
다음은 챗GPT가 리라이팅한 글이다.
요즘 우리는 ‘실리’라는 말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꺼내 든다. 마치 그것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특히 일부에서 말하는 실리주의는,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점점 더 단순한 ‘돈의 논리’로 축소되고 있는 듯하다.
청년들에게 흔히 건네는 말도 비슷하다. “눈높이를 낮춰라”, “일단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라.” 현실적인 조언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 전제가 빠져 있다. 왜 일하는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저 생존을 위해, 혹은 당장의 수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식의 태도는,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조금씩 밀어내게 만든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의와 평등, 자유를 말하던 이들조차 어느 순간 이 논리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할 자리에서, 가격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돈은 원래 목적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사람이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뒤따르는 구조—그것이 건강한 질서 아닐까.
더 우려스러운 장면도 있다. 정치가 종교를 찾고, 종교가 다시 정치의 언어로 해석되는 모습이다. 표를 얻기 위해 신념의 공간을 드나들고, 신념마저도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옳은가’보다는 ‘무엇이 유리한가’가 앞서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개인들 역시 영향을 받는다. 고금리, 투기, 단기적 이익에 대한 집착이 일상처럼 번지고, 때로는 윤리나 명분이 뒤로 밀려난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기기 위한 게임’을 하는 듯한 사회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실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리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일방적인 이익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거래가 성립하는 이유도 결국 쌍방이 이득을 보기 때문이듯, 사회와 경제, 나아가 외교 역시 상호이익을 전제로 할 때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어쩌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실리주의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 붙는 한 단어일지 모른다. ‘상호’라는 말이다. 서로에게 이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실리, 가치와 이익이 함께 가는 질서. 그 균형을 되찾는 일에서부터, 지금의 혼란을 조금씩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