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절차인 의료자문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지금의 제도가 과연 환자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는지 묻고 의료자문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지키고 소비자 알 권리를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의료자문은 보험금 지급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위한 절차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의료자문이라는 수단이 객관성을 읽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축소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의심은 단순한 불신의 수준을 넘어, 실제로 자문의사가 작성한 원문과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전달한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 정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의 심각성은 단순히 의료적 견해가 다르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문의사가 작성한 원래 의견이 보험사 전달 과정에서 변경·축소되거나 다른 내용으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보험금 지급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인 의료적 판단이 보험사의 내부 판단 구조 속에서 다시 가공되고 왜곡된다면, 소비자는 더 이상 공정한 심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환자는 치료의 필요성을 인정받고도 보장을 받지 못할 수 있고, 소비자는 자신이 왜 보험금을 받지 못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그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증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환자와 소비자 권리의 관점에서 분명히 바라봐야 합니다. 보험은 아플 때, 수술할 때, 입원이 필요할 때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망이 되어야 합니다. 소비자는 보험상품에 가입하며 약관과 보험사의 설명을 신뢰하고, 필요할 때 약속된 보장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의뢰하고, 그 자문 내용을 해석하고, 그 결과를 다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전 과정이 사실상 폐쇄된 구조에서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방어권이 원천적으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을 볼 수 없고, 누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알기 어려우며, 전달된 결과가 원래 자문과 일치하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구조는 보험계약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소비자를 철저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합니다.
환자 권리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합니다. 환자에게 의료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닙니다. 치료 여부, 입원 여부, 수술 후 회복과 생존,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근거로 치료의 필요성을 축소하거나 부정하고, 그 결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이중의 고통을 겪습니다. 몸이 아픈 것도 견뎌야 하고, 정당한 치료를 받았음에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제적 고통도 떠안아야 합니다. 특히 중증질환자, 만성질환자, 희귀·난치질환자, 고령 환자일수록 이러한 구조 앞에서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자문이 정말 객관적인 심사 절차라면, 최소한 환자에게 그 판단의 근거와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환자의 진료 현실과 치료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합니다.
보험사가 의사에게 의료자문을 구하는 이유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보험금 지급 거절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서입니까? 의료자문이 환자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면, 그 제도는 이미 본래의 정당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제 의료자문 제도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료자문 관련 5가지 구조적 개선을 정책당국과 국회에 요구합니다.
첫째, 의료자문 원본을 환자와 보험계약자에게 전면 공개해야 합니다. 요약본이나 결과통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원본 전체가 그대로 공개되어야만 자문 내용이 정확히 반영되었는지 검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문의 실명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누가 어떤 전문성과 책임 아래 해당 판단을 했는지 명확히 드러나야 합니다. 익명성과 비공개 뒤에 숨은 자문은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셋째, 보험사로부터 독립된 제3자 의료심사·심의기구를 설치해야 합니다. 보험사가 자문 의뢰부터 결과 전달까지 전 과정을 통제하는 구조에서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독립성과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넷째, 자문서의 수정·편집·재구성을 금지하고, 불가피한 정리나 전달 과정이 있다면 그 이력 전체를 기록·공개해야 합니다. 자문의 원문과 전달문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끊어야 합니다.
다섯째, 금융감독 당국은 부지급 보험 전반에 대한 조사에 즉각 착수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개별 민원이나 일회성 분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보험금 지급 시스템 전반의 공정성과 신뢰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특정 소비자 한 사람의 억울함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 의료인의 문제 제기에만 기대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보험을 믿고 살아가는 수많은 소비자, 질병과 치료의 불안 속에서도 최소한의 안전망을 기대하는 환자들의 권리를 위해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의료자문이 보험사의 비공개 도구로 남아 있는 한, 누구라도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보험은 약속이고 의료자문은 그 약속을 공정하게 지키기 위한 절차여야지, 그 약속을 깨기 위한 장치여서는 안 됩니다. 환자의 치료 필요성이 자문서 한 장으로 지워져서는 안 되고,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험사의 내부 문서 처리 과정에서 사라져서도 안 됩니다.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오늘 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환자와 소비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보험제도와 의료자문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6. 4. 20 (월)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