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보다 살기 싫을땐, 전쟁을 옹호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반대여론이 높은 것은 그래도 아직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경제에서는 파괴가 성장이란 말이 있다. GDP가 부를 결정짓는게 아니라, 당기의 소득을 계산되기에 GDP를 올리려면 기존의 도로를 새롭게 깨서 다시 깔고, 집도 오래 쓴 것보다, 부수고 다시 짓는게 수치로는 더 높게 나올 수 있기 떄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삶의 질을 생각하면, 전쟁을 옹호할 수는 없다. 나같이 지독한 가난과 외움속에서 살아온 사람들마저 전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막상 전재이 일어나면 아니다, 전재을 반대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파산이 목전에 다가와 정신이 없고, 미국이 전쟁에 참가한 이상황에서 우리의 공교육을 파괴하자는 글을 다시 쓴다. 3류대학을 나와 영세 언론사 대표라고 무시하지말고 글을 읽버보기를 바란다.
학교교육에서는 무게가 질량과 중력가속도에서만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실제 체중계를 달아서 결되는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현실속에서는 즉 공기 속에서 무게가 결정되기에 이런 설명은 제대로 된 무게의 결정요소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게의 결정요소를 교육을 통해서 배우지 않더라도 암암리에 이해하고 있다. 그릇된 것이지만, 얼음이 물에 뜬다고 하여 무게가 더 가볍다고 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필자는 얼음이 물에 뜬다는 말보다 얼음의 상당수가 물에 가라앉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책 닫힌 사고를 열어라에서 간략하게 설명되어있다)
즉 똑 같은 질량에서 부피가 크면 무게가 가벼워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조건이 같다면, 부피가 큰 물체가 가볍다고 할 수 있다. 역으로 같은 부피라면 질량이 많은 물질이나 물체가 더 무겁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가 있다. 콩은 가라앉는데, 콩가루는 물에 뜬다. 즉 부피당 질량이 같은데도 덩어리가 매우 작아 표면적이비가 크다면, 비중은 작아지고 무게도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게가 공기속 비중과 같다고 생각하라니 잘못이해할 수가 있다. 가령 공기에 대한 상대값이 비중값이 무게냐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공기속 비중과 같은 원리에 의해 무게가 결정된다는 것은 수증기나 기체등의 무게를 생각해보면 쉽다. 이슬이나 기체는 질량이 많아도, 부피나 표면적비가 훨씬 커서 무게가 없는 것처럼 공중에 뜰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은 챗GPT가 리라이팅 한 글이다.
우리는 학교 교육에서 무게를 질량과 중력의 관계로 설명받는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물체는 대부분 공기나 물과 같은 매질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무게는 단순히 질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무게는 물체의 질량뿐 아니라 부피, 그리고 주변 매질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부피가 크면 같은 질량이라도 공기나 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게 되며, 그 결과 더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특별한 교육 없이도 일상 속에서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얼음이 물에 뜨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얼음이 가볍다고 말한다.
이처럼 질량은 계산과 설명을 위한 추상적 개념이라면, 무게는 물체와 환경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현실에서의 무게를 이해하려면 질량뿐 아니라 부피와 매질과의 상호작용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챗GPT는 이글에 대해 사고를 흔든 에세이로서 충분한 가치가 잇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