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무명의 가난과 외로움은 추위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의학자는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살찐 사람이 추위를 더 탈까, 마른 사람이 더 잘 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혈액순환이 좋고, 대사기능이 활발한 사람이 추위를 덜 탈 것이란 생각이다. 왜냐하면, 손이 시릴 때도 조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손이 시럽지 않은 것을 보면, 심장의 혈액이 손끝, 발끝까지 빠르게 순환하면 체온이 잘 유지된다고 보이기 떄문이다.
어쨌든 불황기에 닥친 추위는 나같이 추위에 더 민감할 수 있다. 돈도 전국 곳곳에 잘 흐르면 국민들이 추위를 덜 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시기에 이념을 강조하면, 그게 먹혀 들어갈까. 하지만, 실리추구 과정에서 나만 느끼는 것인지 모르지만, 배부른 개돼지가 되고파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면 실리만을 강조하는 이 사회는 분명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의 상대어는 이념이 아니라 명분이다. 명분은 윤리를 포함하는 정의도 될 수 있고, 공정도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념, 좌파와 우파는 장기적인 실리 싸움에 다름없다.
사회주의 수단을 단기적으로 사용했을 때, 또는 자본주의 수단을 단기적으로 가령 보유세 완화 및 감세 등을 사용했을 때,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미치는 해악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이념을 강조하기 전에, 공정과 정의를 강조해야한다. 이념보다도 정의와 공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리의 상대어로서 중요한 명분이다.
정치는 실리도 중요하지만, 명분과 실리의 균형이 더 중요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도 맞는 말이지만, 개돼지와는 다른 아니 개만도 못한 사람이어서는 더더욱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극우파나 극좌파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자신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하는 이분법에 빠져있다. 가령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하려다 보니, 이 세상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다면, 인육이라도 먹지 않겠느냐는 비정상적인 가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설령 그런 상황이 와도 사람들은 굶어 죽으면 죽었지, 인간을 살해하지 않을 사람도 분명 있고, 또한 그런 상황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아니고서는 사람들은 이김심 뿐 아니라, 남에게 기여를 하며 기쁨을 느끼는 감정도 갖추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념도 전시상황 같은 상황에서 줄을 서야 하는 것을 가정해서 줄을 세우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은 어느 한 편에 줄을 서야할 상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