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 소비자들 사이에서 식물성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채소와 콩류, 통곡물 등 식물성 식품은 섬유질과 비타민, 미네랄,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이 풍부해 건강 식단의 핵심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일부 식물성 식품에 포함된 특정 성분들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정보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며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성분은 ‘항영양소’와 ‘이소플라본’이다.
n 항영양소(Antinutrients), 알고 보니 식물의 생존 전략
항영양소는 체내 특정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는 물질로, 주로 식물에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식물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천연 방어 물질’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항영양소로는 콩에 풍부한 렉틴, 곡물에 풍부한 피트산, 십자화과 채소에 풍부한 라피노스 등이 있다.
n 렉틴(Lectin), 조리 과정 통해 대부분 감소…항산화·항암 가능성도 주목
대표적인 항영양소 중 하나인 렉틴은 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점막 자극, 영양소 흡수 방해 등의 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렉틴은 수용성 단백질로, 식품의 표면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물에 담그거나 가열하는 등의 일반적인 조리 과정을 통해 그 활성이 상당 부분 감소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렉틴 섭취의 위험성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건강식단 전문매체 ‘스트리트 스마트 뉴트리션’(Street Smart Nutrition)의 대표이자 공인 영양사인 ‘카라 하브스트리트’(Cara Harbstreet)는 포브스(Forbes)를 통해 “렉틴의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는 대다수가 세포, 식물, 동물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며 “해당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한편 최근에는 렉틴의 항산화, 혈당 조절, 항암 효과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암세포의 특정 경로를 자극해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기전이 밝혀진 바 있으며, 이를 활용한 검사법이나 항암 치료 보조제와 관련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n 피트산(Phytic acid), 미네랄 흡수 저해보다 항산화 효과 주목
피트산은 철분, 아연 등의 미네랄과 결합해 체내 흡수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식품 속 피트산도 물에 담그거나 발효, 절임 등의 조리 과정에서 전체적인 함량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동물성 식품이나 과일 등을 포함한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일반인의 경우 실제 영양 결핍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최근에는 피트산의 다양한 기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콜레스테롤 감소, 혈당 상승 방지, 항산화 등 피트산의 다양한 생리활성도 보고되고 있다. 특히 이노시톨 헥사키스포스페이트(IP6, Inositol hexaphosphate)로도 불리며, 암세포 증식 억제, 염증 반응 및 산화 스트레스 조절 등과 관련된 효과가 최근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면역 및 세포 건강 관련 건강기능식품 소재로 활용되고 있으며, 항암 측면의 연구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n 라피노스(Raffinose), 장내 유익균 증식 돕는 프리바이오틱스
라피노스는 십자화과 채소 및 콩류 등에 함유된 올리고당으로, 대표적인 프리바이오틱스 중 하나다. 이 성분은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대장으로 이동한 뒤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며, 이 과정에서 가스가 생성돼 복부 팽만감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효 과정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라피노스는 장내 유익균의 증식을 돕고, 단쇄지방산(SCFA, Short-Chain Fatty Acids) 생성을 증가시키는 등 장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미 국내 및 일본에서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고시한 건강기능식품공전 기준에 따르면 라피노스의 일일 섭취량은 3~5g이다.
n 이소플라본(Isoflavone), 우려와 달리 여성 건강 등 도움을 주는 식물성 기능성 성분
콩의 대표적인 생리활성물질 중 하나인 이소플라본은 뼈 건강, 심혈관질환, 폐경기 증상 완화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이소플라본은 식물성 에스트로겐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여성 호르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소플라본은 폐경 전에는 체내 에스트로겐과 경쟁적으로 결합해 항에스트로겐 작용을 하고, 폐경 후에는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이소플라본은 여성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생리 전 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 및 폐경기 증상 완화와 관련된 긍정적인 연구 결과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이소플라본이 갑상선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일반인 및 무증상 갑상선 기능 저하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결과, 요오드를 충분히 섭취하는 경우 이소플라본이 갑상선 호르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반적인 식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소플라본 섭취로 인해 갑상선 기능이 저하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항영양소와 이소플라본은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항산화, 장 건강 개선 등 다양한 생리적 이점을 함께 지니고 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도 “식품 섭취 시 미량의 항영양소로 인한 잠재적 유해성보다 건강상 이점이 훨씬 크며, 이를 피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