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삶의 의지가 꺼져간다. 살기 위한 고통이 삶에서 얻는 행복보다 초과된 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 눈능ㄹ 감으면 이 고통은 사라지지만 행복도 사라지겠지. 처음부터 인생자체가 허망한 것 아닐까.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을 제하면 물거품인 것 아닌가. 마지막까 사이비 진보들을 꺠부수고 싶은 마음에 또 글을 쓴다.
정년 연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정년 연장은 필요하다.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인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사회에서,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실업자로 만드는 제도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 60세, 65세라는 숫자만으로 사람의 노동 능력과 사회적 가치를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정년을 법적으로 연장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노동시장 구조에서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대기업과 같이 고용이 안정된 사람들에게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육아휴직 제도를 생각해보자.
육아휴직은 분명 훌륭한 복지제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도를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고용이 안정된 공무원이나 규모가 큰 기업의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기 쉽다. 반면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그림의 떡에 가깝다.
정년 연장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국가가 아무런 지원과 인센티브 없이 법으로 정년만 연장한다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은 더 오래 일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의 노동자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고용 장벽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정년 연장을 논의하려면 단순히 '60세를 65세로 늘리자'는 식의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가 기업에게 고령자의 계속고용을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과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청년 일자리다.
고령자의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인력을 더 오래 고용하게 되고, 그만큼 신규 채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곧바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사회 진입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젊은 시절의 실업은 단순히 몇 년간의 소득 손실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일을 통해 경험을 쌓고, 기술을 배우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이 시기에 일할 기회를 잃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고민해야 할 것은 '노인을 일하게 할 것인가, 청년을 일하게 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노인에게는 계속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청년에게는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정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농경사회에서는 지금과 같은 의미의 법정 정년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일을 했다. 산업사회가 발전하면서 기업의 조직 운영과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위해 일정한 연령을 기준으로 퇴직시키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연금 개시 연령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건강수명이 길어진 지금, 과거에 만들어진 연령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인투파이브(9 to 5)라는 근무 형태 역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나 농업인, 기업가에게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과 노동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한 제약회사에서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년을 넘어 계속 일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현실에서는 정년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노동정책은 '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를 국가가 일률적으로 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이가 아니라 능력과 건강, 그리고 개인의 필요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계속 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더 일할 수 있고, 쉬고 싶은 사람은 연금을 받아 쉴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필요 때문에 일하는 사람과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기초연금과 공적연금의 개시 연령도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변화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건강한 고령자가 계속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선택도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정년 연장의 혜택이 공무원과 공공기관, 일부 대기업 종사자에게만 집중되는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에게만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법정 정년 연장'이 아니다.
청년에게는 일할 기회를, 고령자에게는 계속 일할 기회를, 기업에게는 고령자를 고용할 유인을 주는 새로운 노동체계가 필요하다.
정년이라는 숫자를 몇 살로 정할 것인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일할 기회를 잃지 않는 사회, 그리고 젊다는 이유만으로 일할 기회를 잃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를 국가가 정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하고, 쉬어야 할 사람은 쉬며, 청년은 청년대로 자신의 첫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
정년 연장의 진정한 목표는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