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동의 없는 '형사처벌 면제' 웬말인가!
법사위는 '위헌적 특례조항' 즉각 삭제하라!
우리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오늘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될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한 공동 입장을 밝히고자 국회 앞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3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개정안에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통한 수사특례, 반의사불벌 형사특례, 형의 임의적 감면 형사특례, 그리고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한 검사의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의 취지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인이 형사 수사와 재판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고위험 필수의료를 기피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도입에는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감당해야 할 큰 불이익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특례가 자칫 피해자와 유가족의 재판받을 권리와 평등권을 제한하거나,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이번 개정안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와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는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유가족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의 공청회 절차는 없었고, 국민참여 의료혁신위원회를 통한 공론화 없이, 발의부터 오늘 법제사법위원회 심의까지 불과 2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는 입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정하거나, 대통령령 등 하위 법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방식에 반대합니다. 수사특례나 형사특례 혜택을 받는 필수의료행위는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고위험·고난도 특성 때문에 기피가 발생하는 영역인 응급, 중증외상, 분만, 중증소아로 한정해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응급, 중증외상, 분만, 중증소아뿐 아니라 '중증'까지 포함하고 있고, 여기에 ‘등’이라는 표현까지 두어 적용 범위를 계속 넓힐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위험·고난도 의료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암, 희귀난치성질환,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등까지 포괄하는 의미의 '중증'이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포함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한 검사의 공소제기를 금지하는 형사특례 조항입니다. 이 조항은 위헌 소지가 매우 큽니다. 이미 교통사고 영역에서도 중상해 교통사고에 대한 검사의 공소제기 불가 특례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한 결과인 사망 의료사고에 대해, 손해배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사의 공소제기 자체를 막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기본권 보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벤치마킹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는 사망과 중상해를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손해배상만으로 검사의 공소제기 자체를 막는 제도는 우리 법체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소방·경찰·군인처럼 고위험 공익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직종에도 없는 형사면책 특혜를 의료인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과 과도한 특혜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과실 인정이나 충분한 설명, 사과 없이도 손해배상이나 보험으로 형사책임을 면할 수 있게 하면 환자안전이 후퇴하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잘못된 풍조를 키울 우려가 큽니다. 정부는 2025년부터 필수의료행위 의료사고 손해배상금을 최대 15억 원까지 보장할 수 있도록 보험료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한 검사의 공소제기를 금지하는 형사특례 조항은 의료인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사과하거나 유감의 뜻을 밝히며, 신속하게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에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의료인이 끝까지 의료과실을 부인하면 조정도 거부할 가능성이 크고, 민사재판에서도 과실이 없다고 다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와 유가족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형사처벌을 포기하거나, 형사처벌을 원하면 손해배상을 오랫동안 미뤄야 하는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정의로운 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문제로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폐지 조항을 지적합니다. 책임보험이나 책임공제 가입이 의무화되더라도, 실제 손해배상액이 보장 범위를 초과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인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일수록 피해자 보호 장치는 더 두텁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관련 수사특례 1개와 형사특례 3개를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1월 28일부터 모두 4건이 발의되었고, 3월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와 3월 13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어 오늘 3월 30일 법제사법위원회, 그리고 내일 31일 본회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위헌 소지가 큰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한 검사의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 조항이 사회적 논의도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 소비자단체와 환자단체는 법제사법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는 대통령령 등 하위 법령에 위임하지 말고, 의료분쟁조정법에 응급, 중증외상, 분만, 중증소아로 한정해 명시해야 합니다.
둘째, 위헌적 요소가 큰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한 검사의 공소제기 불가 형사특례 조항은 반드시 삭제해야 합니다.
셋째, 책임보험·책임공제 가입이 의무화되더라도 보장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액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폐지 조항도 삭제해야 합니다.
아울러, 중대한 과실이 아닌 단순 과실로 발생한 필수의료행위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료인이 의료분쟁 조정 또는 중재 절차를 통해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경우 반의사불벌 특례를 적용하고, 조정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원이 형을 임의로 감면하는 정도가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형사특례 범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심의기간인 5개월 동안 사실상 수사가 중단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의료인이 조정 또는 중재 절차나 민사재판을 통해 손해배상만 하면 검사가 아예 공소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례는 결코 용인될 수 없습니다.
국회와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공청회도 가능하고, 정부 차원의 공론화도 가능합니다. 환자의 생명권, 재판받을 권리, 평등권이 걸린 문제를 피해 당사자의 의견도 듣지 않은 채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법제사법위원회가 오늘 심의 과정에서 이 문제의 중대성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위헌 소지가 있는 조항과 피해자 보호를 약화시키는 조항을 반드시 바로잡아 주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2026년 3월 30일
소비자시민모임·한국소비자연맹·한국환자단체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