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성체계 대대적 개편 필요, 전공의 국가책임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회는 국립의전원법 신속히 심사하고 통과시켜야 한다
○ 2027년 의대 정원 모집 규모 확정을 앞두고, 일부 의사단체가 의료인력 수급 논의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공론장을 흔들고 있다. 공급자 측 추천이 과반을 차지하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서조차 갖은 이유로 추계 결과의 신뢰를 훼손하더니, 이제는 그 위원회 자체가 문제라며 감사 청구까지 거론하고 있다. 추계 결과에는 해당 단체들이 추천한 전문가들의 판단 또한 포함되어 있음에도, 결과가 불리하다는 이유로 절차와 기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협의 주체로서의 모습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이는 전형적인 ‘분석에 의한 마비(Paralysis by Analysis)’ 전략으로, 합의 민주주의의 절차를 왜곡해 직역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행태로 비칠 수밖에 없다.
○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국립의전원법)을 발의한 것은, 지역·필수·공공의료 붕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의 반영이다. 이미 지역에서는 공공병원이든 민간병원이든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진료가 축소되고 병상이 닫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도 현장의 의사 인력 부족으로 인한 진료 공백, 과중한 당직과 초과근무, 응급·분만·외상·중환자 등 필수 영역의 불안정이 전국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이나 계획된 병상 재편이 아니라, “의사를 구하지 못해 병상을 줄이는” 비정상적 축소가 벌어지는 현실은, 의료가 시장에만 맡겨질 수 없는 필수 공공서비스임을 다시 확인시킨다.
○ 특히 의료는 전형적으로 정보 비대칭과 진입규제, 지역 편재가 결합된 영역으로, 시장에만 맡길 경우 필수서비스 공급이 취약해지고 지역 불균형이 고착화되기 쉽다. 그러므로 국가가 인력 양성·배치의 틀을 공공적으로 설계하고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한다. 의사 인력의 수급 불균형은 단순한 시장실패를 넘어 공공의료 기능마저 붕괴로 이어지는 ‘복합 실패’다. 지역과 필수의료의 붕괴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이념으로 나뉠 수도 없다. 누군가는 공공병원, 누군가는 민간병원을 이용하면 된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소 기반이 무너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책무가 있고, 그 책무는 의료인력 양성·배치의 공공적 설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 따라서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의 경실련·보건의료노조·한국노총·환단연은 국립의전원법을 지지하며, 국회가 조속히 심사·의결해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국립의전원은 기존 정원 논쟁에만 매몰되어 표류해서는 안 된다. 수급추계위 논의와 별개로, 정원외 방식 등 다양한 설계를 통해 지역·필수·공공 영역에 필요한 의사 인력을 신속히 양성·공급하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법안에 포함된 지역 공공의료기관 의무복무는 ‘강제’라는 프레임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공적 재정과 공적 교육기회가 투입되는 만큼 공공적 책무가 결합되는 사회적 계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공공 장학, 국비 지원, 공공부문 인력 양성 등에서 ‘지원-복무’ 연계는 정책적으로 활용되어 온 수단이다. 지원자는 그 조건을 알고 선택하며, 논쟁의 핵심은 의무의 유무가 아니라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설계에 있다. 즉 처우·교육·경력 발전·정주 지원이 함께 갖춰져야 제도는 작동하고, 그때 비로소 국민이 체감하는 공공의료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 국립의전원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어떤 의사를 어디에, 어떤 역량으로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 책임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수련을 병원 경영 논리에만 맡길수록 필수과, 지역수련은 취약해지고, 수련 여건은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병원들은 상대가치수가에 포함된 전공의 수련비용을 지불받고 있음에도 전공의의 기본급을 깍아버리는 계약을 일삼기 시작했다. 이제 수련 인프라는 공공재임을 분명히 하여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체계로 옮겨져야 한다. 광역 단위 수련센터(또는 공공 수련 네트워크)를 통해 필수과, 지역의료의 수련 기반을 안정화해야 한다. 일차의료–2차의료–상급종합병원 수련을 연계하고, 공공병원·국립대병원·국립중앙의료원·지방의료원·국가 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공공 수련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임상 역량뿐 아니라 지역의료, 보건의료정책, 재난·감염 대응까지 포괄하는 인재 양성이 가능해진다. 국립의전원은 그 중심 축이 될 수 있다.
○ 아울러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유인 구조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민이 바라는 의사는 언제라도 나의 건강을 돌보아줄 신뢰할 수 있는 지역의 ‘동네 의사’이다. 어렵게 취득한 전문의 면허로 점을 빼고, 쥐젖과 검버섯을 제거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또 다른 진짜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할 뿐이다. 피부와 미용은 다른 면허 체계로도 충분이 가능하다. 의료인력 수급 논의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지역·필수·공공의료의 붕괴를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행태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 국회는 지금이라도 의료인력 수급추계위 논쟁과 별개로, 국립의전원법 제정을 즉시 추진하라! 정부 또한 지역·필수·공공 분야 인력 양성의 국가책임 원칙을 분명히 하고, 지역에서 환자와 국민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국립의전원 설립과 국가책임 수련체계 구축은, 코로나19와 의료대란을 겪으며 깊은 상처를 입은 국민을 치유하고, 무너지는 지역·필수·공공의료를 되살리는 최소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26년 1월 5일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