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를 대상으로 업무보고를 받았다. 아래에서는 이번 대통령 업무보고 가운데 보건복지부 관련 내용 중 ⑴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 ⑵ 연명의료 중단 환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⑶ 응급실 뺑뺑이 대책, ⑷ 필수의료 활성화 방안 등 주요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연합회)의 입장을 밝힌다.
⑴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
대통령은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와 관련해 “젊은 층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고, 탈모도 질환의 일부로 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미용의 문제로 인식되었지만, 최근에는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다.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약값 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제한 급여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면 횟수나 총액을 제한하는 방식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 재정 소요를 따져보고, 건강보험료를 내는 탈모 치료제 사용자에게도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원형탈모처럼 의학적 치료가 가능한 탈모는 현재도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으며, 유전성 탈모 치료제는 의학적 치료와의 연관성이 낮고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 아니어서 급여화되어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는 대통령이 당선된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약으로 제시되지 않았으나, 낙선했던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약으로 제안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환자단체연합회는 탈모 역시 질환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급여화를 통해 치료제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완화해 달라는 요구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요구로써 그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만 건강보험 급여화를 위해서는 임상적 효과가 있는지(임상적 유용성),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비용효과성) 등 기본적인 급여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다른 항목보다 우선적으로 투입할 필요성(우선순위)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도 선행되어야 한다.
유전성 탈모 치료제는 의학적 치료 효과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 측면에서도 사회적 동의를 얻기 쉽지 않다. 예컨대 유방절제술을 받은 유방암 환자의 유방재건술 역시 생명과 직결되지 않고 미용성형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비급여였으나, 환자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로 2015년 4월부터 건강보험 적용 의료비의 50%만 지원하는 선별급여로 10년 이상 운영되고 있다. 또한 암 치료 종료 후 재발 방지를 위해 유지요법으로 항암제 사용이 필요한 경우에도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로 비급여인 사례가 많으며, 대표적으로 면역항암제는 급여기간 2년이 경과하면 일괄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중단된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 논의가 사회적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유방재건술의 급여율을 현행 50%에서 상향하고, 면역항암제 역시 환자 상태에 따라 2년 이후에도 재발 방지 차원의 급여 연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아직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급여화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2월 11일 출범한 의료혁신위원회에서 탈모 치료제, 유방재건술, 항암제 유지요법, 생명과 직결된 신약·신의료기기·신의료기술 등을 포함한 비급여 항목의 건강보험 재정 사용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주요 과제로 선정해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⑵ 연명치료 중단 환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대통령은 “생애 말기에 연명의료와 관련해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된다.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경우 재정 절감 효과가 상당할 텐데,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면 해외 사례를 포함해 건강보험료를 인하하는 정책이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홍창원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고 답변했으며,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명의료는 환자가 존엄한 임종을 맞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의료비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윤리적·도덕적 측면을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해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당시부터 경제적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이를 활성화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생애 말기에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환자가 빨리 사망하므로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되는 것은 사실이나, 절약된 재정은 생애 말기 돌봄과 임종 돌봄에 재투입되어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결정 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선택에 국가가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망자 중 호스피스 전문기관(입원형·가정형·자문형 포함)을 이용하는 환자 비율이 약 20~25%에 불과하다. 임종실 건강보험 급여기간도 최대 3일로 제한되어 있으며, 자택 임종을 지원하는 왕진 호스피스 의사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해당 발언을 하면서 개인적 견해가 아닌 전언임을 전제한 점을 고려하면, 이는 연명의료 중단으로 절감되는 건강보험 재정을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환경 조성에 재투입하라는 취지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에 환자단체연합회는 연명의료 중단으로 절감된 건강보험 재정을 생애 말기 돌봄과 임종 돌봄에 재투입할 것을 촉구한다.
⑶ 응급실 뺑뺑이 대책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라 응급실 시스템이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환자가 길 위에서 사망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대통령은 “과거에는 병원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었으나, 코로나19를 거치며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관행이 당연시되면서 응급실 시스템이 오히려 퇴보했다고 지적했고, 환자를 태운 구급차 구급대원이 일일이 전화를 돌려 병원을 찾는 현재의 대응 방식이 합리적인지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응급의료기관이 우선 환자를 수용해 응급처치를 시행한 뒤 치료 가능한 병원을 수배해 전원하는 체계가 상식적이라고 강조하며, 이론적 설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길에서 죽어가는 응급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응급실 뺑뺑이 대책을 별도로 마련해 국무회의에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환자단체연합회는 대통령이 응급의료계나 119 소방청의 기존 주장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을 직시한 구체적 주문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응급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사망하는 사건은 단 한 건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행정·재정·입법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 응급의료계와 119 소방청, 국민과 환자가 함께 일정 부분 양보하며 협력해야 한다.
특히 골든타임 내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정당한 사유로 수용 불가를 사전 고지해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한 경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중증응급환자를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 또는 권역응급의료상황센터의 요청에 따라 수용해 치료한 응급의료기관과 의료종사자에 대해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형을 필요적으로 감경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포함된 ‘중대한 과실이 없는 불가피한 응급의료 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의 임의적 감면’ 규정(응급의료법 제63조 제1항)을 필요적 감면 규정으로 변경하는 것에 환자단체연합회는 반대하지만, 응급실 뺑뺑이 상황에서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해 치료한 경우에 한해 형사책임을 필요적으로 감면하는 제도 도입에는 찬성한다. 이와 함께 ‘응급실 뺑뺑이’로 입은 환자의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공적 보상 체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당 응급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평가뿐 아니라 재정적 인센티브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⑷ 필수의료 활성화 방안
대통령은 필수의료 위기의 원인을 의료진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방치해 온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핵심 원인으로 ‘위험과 책임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가 구조’와 ‘의료사고 발생 시 과도한 형사처벌 위험으로 인한 사법 리스크’를 언급했다. 이에 따라 필수의료 분야에는 위험과 책임에 상응하는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과도한 사법 리스크 역시 처벌 중심이 아닌 예방과 시스템 책임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은 응급·분만·소아·중증·외상·심뇌혈관 등 핵심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위험도와 난이도, 업무 강도를 반영한 수가 보상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와 명백한 과실에 의한 의료사고를 구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의료분쟁 발생 시 형사고소 이전 단계에서 조정·중재·보상 체계가 작동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설명했다.
우선 대통령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정’과 ‘과도한 사법 리스크’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에 대해 환자단체연합회는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년간의 사회적 논의를 통해 위헌성이 높고, 경상해만 적용되며 사망과 중상해는 적용되지 않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벤치마킹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은 추진하지 않기로 정리가 된 상황이고, 필수의료 종사 의사들이 의료사고로 중형을 선고받아 필수의료를 기피한다는 의료계의‘과도한 사법 리스크’ 주장 역시 정부 연구 결과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용어가 사용된 것은 대통령에게 의료계의 목소리만 전달되고 환자와 의료사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자가 의료사고 발생 시 형사고소에 나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해외처럼 ⑴ 환자안전사고 설명의무 도입, ⑵ 환자안전사고 사과·유감·위로 표현에 대한 증거능력 배제 도입, ⑶ 의료사고 트라우마센터 설치·운영을 통해 피해자와 유가족의 울분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망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입법 사례는 국내외에 존재하지 않으며, 형사고소권은 일신전속적 권리로 상속되지 않으며, 자칫 생명 경시 풍조와 환자안전을 소홀히 할 우려도 크다는 점에서 관련 논의는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
다만 중상해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료분쟁조정법 제51조 제1항의 반의사불벌 특례 적용 대상을 현행 ‘경상해’에서 ‘중상해’까지 추가해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업무 보고 시 언급했던 분만 의료사고로 저산소성 뇌 손상을 입어 평생 뇌성마비처럼 중증 장애(중상해)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환자 사례의 경우 치료비 이외 평생 수십억 원의 간병비가 필요하다. 이를 민사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으로 받으려면 입증책임 부담으로 승소도 쉽지 않고 장기간과 고액의 소송비용이 들지만, 의료분쟁 조정이 성립될 경우 최대 4개월 이내 신속한 해결이 가능하고, 비용도 소액의 수수료만 내면 된다. 만약 의료분쟁 조정절차에서 의료사고 피해자도 동의해 조정이 성립했을 때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조정 성립을 위해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정부와 달리 대통령 업무보고를 처음으로 전면 생중계했다. 이를 통해 보건의료와 복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국민이 직접 지켜볼 수 있었으며, 대통령이 “넷플릭스보다 재밌다.”고 언급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끌어 국정 참여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생중계라는 형식적 특성상 심층적인 정책 토론보다는 대통령의 지시 사항 전달이나 관심 사안에 대한 질의에 논의가 집중되는 한계도 함께 드러났다. 특히 1년 7개월 동안 이어진 의정 갈등으로 발생한 의료공백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들에 대한 구제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이 이번 업무보고에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통령은 업무 보고 과정에서 의료계와 한의계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보건의료 정책에 있어 의사와 한의사 역시 중요한 당사자이지만, 환자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다. 환자와 환자단체 역시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2025년 12월 24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 한국파킨슨희망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