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연합회)와 소속 10개 환자단체는 지난 7월 22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했고, 오늘 12월 16일이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 시위는 국회에 발의된 「의료공백 재발 방지 및 피해 구제 3법(환자기본법안,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안,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회는 2020년, 2024년 두 차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 사태를 겪은 환자와 국민의 의료공백 불안과 재발을 방지해 향후 반복될 수 있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으로부터 미래의 환자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적 조치에 조속히 나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 환자단체연합회는 다음 법안들의의 신속한 심의와 국회 통과를 요청드립니다.
❶ 환자의 투병과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환자기본법안(남인순 의원 대표발의)]
❷ 입증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이 부담하고, 의료대란피해보상위원회를 통해 손실을 보상해 주는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안(박주민 의원 대표발의)]
❸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과 같은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진료과 관련 의료행위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수진 의원 대표발의)]
[환자보호 3법]의 입법을 위해 지난 100일 동안 환자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환자단체의 이러한 간절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환자보호 3법] 입법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전공의의 연속수련 시간을 24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등 전공의 근무 여건과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개정안이 의결됐습니다. 또한 응급의료종사자 폭행·협박 시 보호조치를 의무화하고, 응급의료종사자 폭행에 대한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하며, 적용 장소를 ‘응급실’에서 ‘응급의료를 실시하는 응급실 외 장소’로 확대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의결됐습니다. 이 두 법안은 전공의와 응급의료종사자의 강한 요구를 반영한 입법입니다.
그러나 정작 의정갈등으로 가장 큰 고통과 피해를 겪은 ‘환자’를 위한 법안은 전무(全無)했습니다. 의료공백 사태의 재발을 막고, 피해 구제를 위한 법적 장치는 이번 본회의 안건에 단 한 건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의료계 요구 법안들이 급물살을 타며 처리된 것과 달리, 환자들의 절규가 담긴 법안들은 여전히 상임위원회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답보(踏步)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난 1년 7개월 동안 의정갈등과 이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로 환자와 국민은 심각한 고통과 피해를 겪었습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질환이 악화한 암이나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도 있습니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집단행동으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정부의 특혜성 조치로 의대생과 전공의는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은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사실상 중단된 상태입니다.
특히, 환자기본법 제정 논의가 국회에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의대정원 관련 의정갈등과 의료공백 사태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정부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장기간의 의료공백을 겪은 환자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방법으로 환자들끼리, 환자단체들끼리 치료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응원하며 버텨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환자 중심이 아닌 의사 중심이라는 사실을 실감했고, 환자의 투병과 권리 증진을 위한 법적 체계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환자가 투병과 권리 증진에 있어 객체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환자 중심의 보건의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24년 12월 3일‘환자기본법’ 제정안이 대표 발의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환자단체 정의를 규정해 법정위원회에 환자를 대변해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환자의 권리와 함께 의무도 규정하고, 실태조사와 연구사업을 통해 환자정책 기본계획·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환자정책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환자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하고, 환자투병지원센터 설립·운영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환자의 목소리를 국회는 진정성 있게 들어야 합니다. 환자기본법 제정안에는 환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으며, 이 법안의 신속한 통과는 이러한 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년 7개월 동안의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는 보건의료 환경이 환자 중심적이지 않을 때 어떤 고통과 피해를 겪어야 하는지 보여준 사건입니다. 환자가 잘 치료받고, 환자의 권리가 잘 보호받을 수 있도록 환자기본법 제정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됩니다.
1년 7개월 전 집단사직 방식으로 의료현장을 떠났던 전공의들이 정부의 특혜성 조치로 지난 9월 수련병원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피해를 당한 환자들의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안]은 정부 반대로 현재 입법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으로 피해를 본 국민의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 2025년 4월 22일 제정된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특별법]이 지난 10월 23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법이 제정된 핵심 이유는 백신 접종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입증책임을 질병관리청장이 부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환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또는 피해자인 환자나 유가족이 입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입증책임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부담하도록 하는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안]이 발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손실보상의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현실적으로 피해자 특정과 손해의 정도 판단이 불가능하다거나, 일반적인 입증책임 원칙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닌 피해자인 환자나 유가족이 입증해야 한다는 이유로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안]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역시 재정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는 이유로 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은 2020년과 2024년 두 차례 모두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수련 현장을 떠나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집단행동을 선택했습니다. 두 번의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 사태를 직접 겪은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특혜성 조치로 전공의를 복귀시키면 향후 세 번째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고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응급의료, 중환자 치료·분만(신상아 간호 포함)·수술·투석과 이러한 의료행위를 지원하기 위한 마취 및 진단검사(영상검사 포함)와 같은 필수유지의료행위의 유지·운영을 정당한 이유 없이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절대 미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지난 9월 14일 수련병원으로 복귀한 전공의들이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을 창립하고 출범식도 개최했습니다. 이때 조합원 3천 명 이상이 조직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동조합과 조합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적용을 받으며, 같은 법 제42조의2(필수유지업무에 대한 쟁의행위의 제한)에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과 동일한 내용이 이미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국전공의노동조합’에 가입한 전공의들에게는 필수의료 공백을 방지할 의무가 부과됩니다. 전공의들이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을 출범시키고 이에 가입하는 순간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해야 할 의무는 이미 발생합니다. 그와 동일한 취지의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입니다.
특히, 이 개정안은 의료인의 집단행동 자체를 금지하는 법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최소한의 필수의료를 일정 수준의 비율로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이므로 헌법상 직업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지도 않습니다.
이에 환자단체연합회는 국회 정문 앞에서 진행해 온 릴레이 1인시위 100일째 되는 오늘, 다시 한번 의료공백 재발 방지와 피해 구제를 위한 [환자기본법안], [의료대란 피해보상 특별법안], [필수의료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포함한 [환자보호 3법]의 신속한 입법을 국회에 촉구합니다.
오늘로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00일 동안 국회 앞에서 진행했던 릴레이 1인시위를 마무리하고, 이후에는 국회 안으로 들어가 국회의원 한분 한분 찾아가 [환자보호 3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설득할 계획입니다.
2025년 12월 16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 한국파킨슨희망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