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는 극도로 썩어빠진 한국의 시장화된 의료시스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의료급여 수급권자, 홈리스, 장애인, 이주민, 보건의료 노동자, 그리고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주민들은 돈벌이에 매몰된 냉혹한 의료체계에서 기본적 권리를 유린당하고 있다.
한국은 아파서 가난해지고, 가난해서 아픈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회다. 권리가 아닌 돈벌이 상품으로 전락한 의료는 비용을 이유로 건강과 생명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뿐인가. 비급여와 과잉진료로 환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민간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을 기피대상으로 여긴다.
생명과 건강의 보루인 공공병원의 비율은 단 5%밖에 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민간병원은 감염병 환자를 외면했고, 얼마 안 되는 공공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이 됐다. 이로 인해 공공병원에서 치료받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쫓겨나야 했다. 홈리스는 법으로 국가가 지정한 병원만 이용할 수 있고(‘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 그 병원도 당연히 공공병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버려졌다.
가난한 우리 중 다수는 장애인이다. 더 많은 돌봄과 치료를 필요로 하지만, 한국은 기본적인 장애인 이동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회다. 병원 접근이 어렵고, 추가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치료받지 못해 죽어간다. 정신장애 등 심리사회적 장애 당사자는 많은 경우 강제입원되고, 폐쇄병동에 가둬지고, 반인권적인 격리 강박에 처해지다가 목숨을 잃는다. 민간병원은 강제입원‧장기입원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으로 돈벌이를 한다. 차별과 혐오로 유지되는 사회와 돈벌이로 유지되는 보건의료 시스템이 우리 삶을 폭력적으로 옥죄고 있다.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게 해달라는 목소리는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왔다.
사람과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으로 하는 병원은 노동자들도 쥐어짠다.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제때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며,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일한다. 아픈 노동자가 아픈 환자를 돌본다. 그러다 과로에 쓰러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공공의료의 붕괴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더 큰 재난으로 내몬다. 우리는 응급실도 분만실도 없는 나라에 산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민간병원은 들어서지 않는다. 암이라도 걸리면 서울 ‘환자방’을 전전해야한다.
이주민의 삶은 어떤가. 수십만의 사람들이 의료보장에서 제외돼 있다. 의료비 부담 때문에, 장시간 노동으로 병원 갈 시간도 없어서, 심지어 의료진과 의사소통이 안 돼서 아파도 참는다.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어마어마한 흑자인 이유다. 그럼에도 이주민들은 건보 재정적자의 주범이라는 거짓 낙인에 시달리고 있다. 우파들은 기업과 정부가 망가뜨린 열악한 건강보험 문제를 중국인 탓으로 돌려 이주민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있다.
의료가 시장화된 이 현실은 역대 정부가 만들어왔지만, 윤석열 정권은 더 가차 없이 약자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은 아픈 이들에게서 의료를 빼앗는 짓도 임기 내내 벌여왔다. ‘복지부는 보건산업부’라며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고 공공의료를 파탄냈다. 건강보험 제도를 공격해 보장성을 줄이고, 공공병원 재정지원을 중단해 경영난을 유발하고, 노동자를 임금체불로 내몰았다. 심지어 파면된 이후에도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권이 의료급여 개악을 밀어붙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시장주의 정책이 절망과 고통을 낳고 그 속에서 극우가 창궐하고 있다.
우리는 촉구한다. 윤석열과 내란세력이 척결되어야 하듯이, 윤석열식 의료 시장화와 공공의료 파괴정책을 끝장내야 한다. 의료 시장화를 중단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라!
의료를 상품화하고 시장화하는 정책들을 모두 중단하라.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라.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를 없애고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를 권리로서 보장받게 하라.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병원에 갈 수 있게 지역마다 공공병원을 늘려라. 인력충원을 법제화해 노동권을 보장하라.
가난한 사람들이 과잉 의료이용을 한다는 거짓말을 멈추고,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을 전면 중단하라. 아파도 병원 문턱을 못 넘는 우리다. 거짓 모욕하고 낙인찍지 말라.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라. 원하는 병원,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가 감히 빼앗는단 말인가. 차별적인 제도운영을 중단하라.
이주민에 대한 건강보험 차별을 중단하라. 이주민 혐오에 기반한 재정적자 주범이라는 거짓 낙인을 멈춰라. 재정 문제는 누구의 탓인가. 평범한 사람들의 등골 빼먹는 폭거를 중단하고, 부자와 기업주들한테 보험료를 제대로 걷어라.
장애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 건강권법」을 전부 개정하라.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이동 편의를 보장하라. 재활‧치료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건강권을 누릴 수 있게 하라. 강제입원과 격리‧강박으로 유린당하는 정신장애 등 심리 사회적 장애 당사자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라.
모두의 존엄과 생명을 위해 우리는 함께 요구한다. 공공의료로 권리를 보장하라. 우리에 대한 거짓 낙인을 중단하라.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각자도생‧시장주의를 한층 들여오기 위한 칼이다. 그 칼끝은 서민 대중 모두를 향한다. 의료를 시장화해서 이익을 보는 자들, 불의한 정치에 함께 맞서자. 권리로서의 건강과 생명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오늘의 외침을 계속 함께해나갈 것이다!
2025년 5월 22일
의료시장화 중단! 공공의료 강화!
빈곤층 의료비 인상 중단촉구 결의대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