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좋은 한국 의료는 비참하다. 의료대란 이전에도 비참했다. 미국과 일본의 진료 질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경증 환자는 어디서나 치료할 수 있지만 중증 환자는 전혀 다르다. 중증 환자는 더 자세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중증 뇌전증은 그것만으로 안 된다. 비디오뇌파검사실과 뇌전증 수술팀이 있어야 하는데 거의 없다. 정부는 완전 무관심이다. 중증 환자를 얼마나 잘 치료하고 지키는 지가 그 나라의 의료 수준이다. 한국은 중증 환자들의 지옥과 같다. 병원 밖에서는 의료진과 소통할 수도 없고, 응급실을 방문해도 퇴짜를 맞고, 입원도 교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올해 2월까지 수년간 다니다가 정년 교수를 따라서 다른 병원으로 갔다고 응급실에서 받아 주지 않는다. 빅4 병원 응급실이 자기 병원을 다니는 환자만 본다고 한다. 이게 상종병원이고 의료인가. 정말 개판이다. 미국은 전혀 다르다. 중증 환자 수술 후에는 주치의, 전담간호사와 환자의 대화방이 바로 만들어진다. 그 안에 검사, 수술 결과 등 모든 것이 들어있고, 문제 발생 시 바로 소통 한다. 이것이 미국 의료이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일이다. 양심이 있으면 한국의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 논문을 많이 쓴다고 의료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완전 별개이다. 의료의 질은 얼마나 포괄적인 진료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적어도 생명이 위태로운 매우 중증 환자 (심장 수술 후 불안정한 환자 등)들은 병원 밖에서도 바로 의료진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 정신 차려라. 필자의 형도 심장 수술 후 거의 죽을 뻔했다. 동생이 의대교수였기 때문에 겨우 살았다. 일반 국민이라면 벌써 죽었다. 형은 “요즘은 병원에 가는 것도 어려우니 그냥 집에 죽는 게 나을 것 같아”라고 하면서 병원 가기를 거부했다. 필자가 거의 강제로 둘러매고 응급실로 갔다. 보건복지부는 이제 복지부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보건복지부가 복지부동하면 국민이 죽는다. 죽음은 아무도 돌이킬 수 없다. 자리에 앉아서 권위만 내세우고 의료현장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도 의료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나라 국민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옥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죽는다.
이번에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 현장을 실제로 체험했고 환자가 의료장비, 인력, 또는 의사 실력이 모자라서 죽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죽어서 몇일 동안 책상을 치면서 슬퍼했던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의 무능과 무관심, 복지부동 때문에 질병으로, 자살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이번에 장관을 잘못 뽑으면 앞으로 살 수 있는 수만명이 또 죽게 된다. 대통령은 이 사실을 꼭 인지해야 한다. 매우 중증 환자의 병원밖 관리 체계를 긴급히 세우고, 20년 동안 실패한 자살 예방 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보건과제이다.
홍승봉교수
뇌전증지원센터장
성대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