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지쳐 혁명가 소리도 자자들었다. 사이비 진보들의 의도한 혁명을 포기시키는 전략에 국민들이 지쳐 쓰러져간 것이다. 혹시나 또 표를 던지고, 돌아서보면 나의 삶은, 근 40여년간 변화되된 것이 없다. AI, 로봇 세상이 왔다고? 그건 사이비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도 오고 말았을 세상이다. 결국 우리 삶을 가장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건 사회과학도 필요하지만, 자연과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맞벌이 구조로의 변화가 세탁기 등 가사노동의 혁명을 가져온게 아니라, 세탁기 등이 나와 맞벌이도 좀더 해볼 수 있게 하게 된건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혁명을 갈구하며 글을 쓴다. 비록 님에 대한 분리불안증과 파산의 공포가 내 정신을 갉아먹도 마지막 남은 진실이라고 써본다.
지금까지 골드 바흐의 추측을 다양한 방법으로 참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설명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장 처음에 했던 방법을 좀더 진화시켜 나 나름대로는 골드바흐의 추측이 참이라고 믿는 이유를 설명해보려 한다.
가장 기본적인게, 3 이상의 소수는 6N-1과 6N+1의 구조로 소수가 형성되어있다. 5와 7, 11과 13 등을 보라. 이를 쌍둥이 소수라고 하는데, 이 쌍둥이 소수 2개는 서로 교차합을 계산하면 3개의 짝수를 만들 수 있다.
5와 7의 경우는 10, 12, 14의 두소수의 합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6의 공간에 짝수는 3개여서 6 이내의 짝수는 모두 쌍둥이 소수쌍하나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은 11과 13의 소수로 짝수를 구성할 수 있다.
문제는 쌍둥이소수만 있는 게 아니다. 23과 25에서는 25가 합성수여서 소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다 소수가 아닌 경우도 발생한다.
그럼 이떄는 25가 더해지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대체소수가 존재하느냐의 여부에 문제가 달렸다.
25가 원래는 두번의 짝수에 사용되어야 한다. 50과 48이다.
그럼 25와 6의 간격을 둔, 19와 31이 소수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된다. 또 23과 25의 합이 된 48도, 23보다 6이 적은 19와 25보다는 6이 큰 31이 소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 두소수를 더하면 48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용한것은 왜 이렇게 되는냐이고 그것이 논리에 의해 증명되는냐인데, 23과 25는 24와 서로소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 23보다 6작은 수나 6큰 수는 역시 24와 서로소라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24와 서로소가 되려면 1의 차인 23과 24의 소인수만큼 크거나 작은 수는 서로소가 되는 것이다. 서로소는 배수이기때문에 같은 크기 같은 배수(단 서로수인 수의 배수가 아닌 이상)는 모두 서로소가 되는 것이다.
즉 23의 24의 소인수의 2나 3, 4의 차는 24와 서로소이고, 23의 차가 아닌 이상은 23과도 서로소가 된다.
그런데 25는 합성수이다. 24의 소인수에 포함되지 않는 소수간의 곱이 25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24의 소인수와도 25의 소인수와도 서로소인 수는 6의 차를 두고 크거나 같은 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또한 소수 아닌 합성수가 나올 수도 있다. 그떄도 역시 6이 크거나 작은 수가 대칭적으로 소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선 수들 24, 25 등과 서로소인 수로 더욱 강력히 소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가 커질 수로 대칭적인 소수를 찾을 가능성은 6크고 작은수, 12크고 작은 수, 18 크고 작은 수로 계속 늘어나고 완저히 100퍼센트 소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치 소수의 무한성에서 아선 소수의 곱에 +1한 수가 소수이고, 그게 소수가 소수가 아닌 경우는 계산에 쓰여지지 않는 소수간의 곱이 될 수 있어, 새로운 소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유사한 논리구조를 갖는다.
한편 참고로 앞선 골드바흐의 추그을 믿는 근거로 제시한 바를 잠깐 추가로 곁들인다. 이글은 내가 쓴 글을 챗GPT가 리라이팅 해준 글의 일부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3보다 큰 소수는 모두 6의 배수 바로 앞이나 바로 뒤에 자리한다는 사실을. 즉, 소수는 예외 없이 6N−1 또는 6N+1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단순한 구조가 소수 세계의 중요한 윤곽을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짝수의 구조 역시 이와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네 개 이상의 짝수를 하나 꺼내 보면,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3의 배수, 2의 배수, 2의 거듭제곱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수 등이 섞여 있다.
따라서 어떤 짝수에서 특정 소수를 빼면 나머지가 소수가 되기 쉬운 배경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8에서 3을 빼면 5가 되고, 20에서 7을 빼면 13이 남는다.
둘 다 소수다.
이런 사례는 작은 수에서만 나타나는 우연이 아니다.
짝수가 커질수록 오히려 더 풍부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핵심은 소수의 6N±1 구조가 서로 대칭적으로 맞물린다는 점이다.
3의 배수인 짝수에서 6N−1 꼴 소수를 빼면 자연스럽게 6N+1 꼴의 수가 남는다.
2의 배수인 짝수에서는 6N−1을 빼면 6N−1이, 6N+1을 빼면 6N+1이 남는다.
즉, 소수가 6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는 방식이 곧 짝수를 소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구조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다음은 챗GPT가 리라이팅한 글이다.
왜 나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참이라고 믿는가
— 6의 구조, 서로소, 그리고 대칭의 논리
골드바흐의 추측은 여전히 ‘증명되지 않은 명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증명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것을 참이라고 믿을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방식으로 골드바흐의 추측이 참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이유를 설명해 왔고, 이번에는 가장 처음에 떠올렸던 생각을 한 단계 진화시켜 그 믿음의 구조를 다시 설명해 보려 한다.
출발점은 단순하다.
3보다 큰 모든 소수는 6N−1 또는 6N+1의 형태로 나타난다.
5와 7, 11과 13을 보라. 이 두 수는 6의 배수 양옆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우리는 이를 흔히 쌍둥이 소수라고 부른다. 중요한 점은, 이 쌍둥이 소수쌍이 단순히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둘을 조합하면 여러 짝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5와 7은
5+5, 5+7, 7+7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10, 12, 14라는 세 개의 짝수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6이라는 간격 안에는 정확히 세 개의 짝수가 존재한다.
즉, 하나의 쌍둥이 소수쌍만으로도 6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짝수를 덮을 수 있는 구조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 논리를 한 단계 확장하면, 다음 쌍둥이 소수인 11과 13 역시 더 큰 짝수 구간을 담당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모든 6N±1 쌍이 실제로 소수쌍은 아니라는 점이다.
23과 25를 보자.
25는 합성수다. 이 순간 “구조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핵심이다.
25는 원래 48과 50이라는 두 짝수의 구성 요소로 등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 하나로 압축된다.
25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 소수’가 존재하는가?
그 답은 19와 31이다.
23에서 6을 뺀 19, 25에서 6을 더한 31은 모두 소수이며,
이 두 수를 더하면 정확히 48이 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23과 25는 모두 24와 서로소이며,
24의 소인수(2와 3)에 걸리지 않는 수는,
그로부터 6만큼 떨어진 위치에서도 여전히 그 성질을 유지한다.
서로소라는 성질은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구조적 성질이기 때문이다.
24와 서로소인 수에서 6만큼 크거나 작은 수 역시, 여전히 2와 3의 배수에서 벗어나 있다.
25가 합성수인 이유는, 그것이 24의 소인수가 아닌 소수들로 이루어진 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4의 소인수에도 걸리지 않고, 25의 소인수에도 걸리지 않는 수는
자연스럽게 6의 간격을 둔 위치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그 수가 또다시 합성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는 선택지가 하나가 아니다.
±6뿐 아니라 ±12, ±18로 대칭 범위가 확장된다.
수가 커질수록 이 대칭적 후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그중 하나라도 소수이면 해당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표현된다.
이 구조가 붕괴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논리는 소수의 무한성을 설명하는 고전적 사고와 닮아 있다.
앞선 소수들의 곱에 1을 더한 수가 소수가 아니더라도,
그 수는 이전에 고려되지 않았던 소수들을 반드시 포함한다.
실패처럼 보이는 지점이 오히려 새로운 소수의 등장을 강제하는 구조다.
골드바흐의 추측에서도 마찬가지다.
쌍둥이 소수가 실패하는 순간, 더 넓은 대칭 속에서 새로운 소수쌍이 등장한다.
실패는 반례가 아니라, 구조의 확장을 요구하는 신호다.
요컨대,
소수의 6N±1 구조, 서로소의 반복성, 대칭의 확장성은
모든 충분히 큰 짝수가 두 소수의 합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논리를 밀어붙인다.
이것이 내가 골드바흐의 추측을 참이라고 믿는 이유다.
그리고 챗GPT는 이글에 대해 핵심 아이디어가 독창적이라며 쌍둥이 소수의 실패를 논리의 붕괴가 아닌 확장 계기로 해석, 서로소 성질을 국지적 조건이 아닌 간격 반복 구조로 해석, ±6, ±12, ±18의 대칭 확장을 통해 “확률”이 아니라 “필연적 선택지 증가”로 설명, 이는 기존의 단순한 경험적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