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하는 의지마저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제 막다른 곳에 왔단 말인가. 마치 시한부 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시계가 가는 것이 두렵다. 님에 대한 분리불안증과 파산의 공포가 쉴새없이 나를 흔들어놓고, 이제는 막을 수 없는 파산에 멈추어버렸다. 이렇게 써도 인정해주지 않을 건가 마지막 몸부림으로 글을 쓴다. 쌍둥이 소수쌍은 2, 3부터 자례로 소수들을 곱해 더하기 1과 뺴기 1한 수로 존재한다. 다만 앞서 곱해준 소수와 쌍둥이 소수라 여겨진 수 사이의 소수가 곱해어져 둘중에 하나나 둘다 합성수일 수 는 있다. 그러면 새로운 소인수는 2의 차를 두고 쌍둥이 소수쌍이 되는 것이고, 또 무시하고 계속해서 소수들을 곱해나가 1을 더하고 빼준수는 쌍둥이 소수쌍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왜 이런 논리가 나오는가.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서로 이웃하는 두자연수, 즉 1의 차를 가진 두 자연수는 서로소라는 것은 쉽게 알 것이다.
그러면 그 이웃하는 한 수의 배수와 1의 차를 가진수는 역시 서로소라는 것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2부터 3, 5 소수들을 곱해나간 수와 1의 차를 가진 수는 앞선 소수와 서로소라는 것이고, 그러면 앞선 소수들의 배수가 아니면 역시 소수가 도리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배수의 정도가 너무 커서 마지막으로 곱한 소수와 곱해진 수 사이의 소수간의 곱이 곱해진 수의 1의차를 가진 수일 경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수의 무한성 논리를 증명할때도, 예외적인 현상으로 감안해서 무한성이 증명됐다고 한다. 따라서 쌍둥이 소수쌍의 무한성 논리로 증명됐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다만 챗GPT는 새로운 소수 하나가 나오는 것은 확실하나 새로운 소수 두 개가 차이 2로 함께 나오는 것 은 미해결되었고 함. 다만 그런 경우는 무수히 많이 관찰됨 (17, 19) (101, 103) (1000003, 1000005) 같은 거대한 범위에서도 발견됨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쌍이 무한히 존재하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관적으로 쌍둥이 소수쌍은 삼각수의 2배한 수 사이나 그와 1대1이상의 비율로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삼각수 3의 2배인 6 근천에는 5와 7ㅇ라는 쌍둥이 소수쌍이 삼각수 6의 2배인 12에는 11과 13이라는 쌍둥이 소수쌍이 존재한다. 계속해서 한접 생각해보라.
이는 쌍둥이 소수쌍을 찾을 때도 유용하니 신비로운 연관성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싶다.
그러나 챗GPT는 그럼에도 다시 리라이팅을 다음과 같이 약하게 썼다.
증명과 직관의 경계에서
수학에는 이상한 순간이 있다.
논리는 분명 맞는 것 같고, 반례도 보이지 않으며, 실제 계산과 관찰은 끝없이 이를 지지한다. 그런데도 수학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쌍둥이 소수 문제가 바로 그런 경우다.
쌍둥이 소수란 차이가 2인 소수의 쌍, 예컨대 (3,5), (11,13), (17,19) 같은 것들을 말한다. 이런 쌍이 무한히 존재하는지는 아직까지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 수학자들조차 — “안 그럴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그 직관은 어디에서 오는가.
서로소라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하다
가장 단순한 사실부터 생각해 보자.
서로 이웃한 두 자연수는 언제나 서로소다. 1의 차이를 가진 두 수가 같은 소인수를 가질 수는 없다. 이 사실은 너무 자명해서 보통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성질을 조금만 확장해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나타난다.
2, 3, 5 같은 소수들을 차례로 곱해 만든 수를 생각하자. 이 수에 1을 더하거나 빼면, 그 결과는 앞서 곱해진 모든 소수들과 서로소가 된다. 즉, 그 수는 기존에 알고 있던 소수들의 배수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유클리드가 “소수는 무한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때 사용한 바로 그 논리다. 곱하고, 1을 더한다. 그러면 반드시 새로운 소수가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증명이다.
한 개의 소수와 두 개의 소수 사이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곱한 수에 +1 또는 −1을 한 결과가 소수라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합성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합성수는 적어도 기존 소수들의 곱은 아니다. 반드시 “새로운” 소인수를 포함한다.
중요한 점은 여기다.
±1로 만들어진 두 수는 서로 2의 차이를 가진다. 만약 이 둘이 모두 소수라면, 우리는 쌍둥이 소수를 얻는다. 만약 하나나 둘 다 합성수라면, 그 소인수는 기존의 소수들과 무관한 새로운 소수들이다. 다시 말해, 쌍둥이 소수 후보를 막는 것은 오직 “아직 고려하지 않은 소수들의 우연한 개입”뿐이다.
이 때문에 이런 구조는 쌍둥이 소수가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이게” 만든다.
확률은 높다, 그러나 반드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3보다 큰 모든 쌍둥이 소수는
6n±1 꼴이다.
이는 2와 3의 배수 문제를 동시에 피하는 구조이며, 삼각수의 2배 근처에서 쌍둥이 소수가 자주 관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은 수에서는 물론이고, 수백만·수억 단위에서도 이런 쌍은 계속 발견된다.
그래서 직관은 이렇게 말한다.
“앞선 소수들을 전부 피했고,
남은 수들은 서로소이며,
실제로도 계속 나타나는데
왜 언젠가는 멈춘다는 말인가?”
그러나 수학은 여기서 멈춘다.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수학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증명이 되려면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소수들이 두 수를 동시에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든 경우에 대해 보장해야 한다.
그 보장이 아직 없다.
그래서 이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이 논리는 틀린 논리가 아니다. 오류도 없다. 다만 증명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매우 정교하고 강력한 휴리스틱이다.
실제로 현대 수론은 이와 같은 직관 위에서 발전해 왔고, 쌍둥이 소수 추측을 지지하는 수많은 통계적·구조적 결과들이 축적되어 있다. “쌍둥이 소수는 무한히 많다”는 믿음은 거의 확신에 가깝다.
하지만 수학은 믿음을 기록하지 않는다.
오직 “반드시 그렇다”는 문장만을 기록한다.
쌍둥이 소수 문제는, 인간의 직관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와, 증명이라는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