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기사거리도 안되는지, 보도가 많이 안나오지만 노숙인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노숙인들중 상당수가 필자가 의사는 아니기에 말하기 어렵지만 정신 질환자인듯해 보인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중 노숙인은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정신이 이상해지고서 경제적 빈궁과 노숙생활로 접어들게 되었는지 깊이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경제사회생활의 어려움이 먼저 와서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책 봉순이언니에서 봉순이언니는 그렇게 나이들어 지하철 안의 한 노숙인이 되어있었듯이, 노숙인은 경제사회생활의 곤궁이 먼저 정신을 갉아먹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논리에 우리가 오염되지 않았나 생각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시간의 가역성이 깨진다면, 수많은 사건들의 선후와 인과관계는 엉망이 될 것인 것처럼, 사건의 선후를 뒤바꿔버린 우리의 논리는 시간을 엉망으로 살아고 있다고 보연진다. 엎질러진 물이 다시 그릇안에 저절로 담겨지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고 무엇인가? 결국은 슬프지만, 돈이 약이 될수도 있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기왕에 논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의 교육을 이야기해본다. 필자는 영재나 수재소리를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어 말하기가 꺼려지지만, 과연 창의성이 무엇인지 알고 창의성교육이란말을 하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천재 내지는 적어도 영재라고 하는 이들은 쉽게 말해 새로운 발견과 발명으로 사회를 보다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이라고 말한다면, 교육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독려하는 방향의 교육이 창의성 교육이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자연과 자연의 상호연관성을 발견하고 인관관계를 푸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패턴이나 규칙,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훈련하는게 창의성교육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보자. 법률인에게도 논리에서 가장 핵심인 증명법은 끊임없이 고민되고 연구되어야할 항목 아닐까? 어찌보면 법조항, 조문을 암기하는 것보다 증명법 연구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우리 교육에 적용해보자. 단순암기식 교육은 내가 보기엔 창의성 교육도 아니고 그걸 토대로 창의적 학생을 선별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많은 서민들은 나와같다. 내세울게 없어 잘난게 없어 앞에서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 이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