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일만 하면돼', '너는 너대로 나대로 각자 할일을 하는거야' 하지만, 명작 레미제라블에선 감시했던 경찰관이 몸을 끝내 던지고 만다. 또 실제 현실에서 과거 학생운동이 극심했던 시절, 분신한 대학생을 기자들이 몸에 붙은 불을 끄기전, 또는 끄지 않고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는데, 이게 옳은 행위냐는 논란이 인적이 있다. 과거 남편이 집안일에 손끝하나 안댄다고 투덜대는 아내와 밖에서 일을 하고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남편은 남편대로 쉬지도 못하게 한다고 하는 남편과 불화가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회자되었다. 이같은 모든 문제는 분업화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분업화의 한계는 많이들 이야기 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협업 시대로 가야한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협업을 한다는 것이 모든 일에 업무분장을 하는게 생산성을 높일수 있고, 전문화도 가능한데, 결국 분업화와 무슨 차이가 있냐는데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돈은 떨어지고 날씨는 추운 하루, 흐린 가운데, 갑자기 해가 뜨더니 분업과 협업의 차이가 필자에게 다가온 것 아닌가. 그것은 분업은 나의 목표와 너의 목표가 하위의 목표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협업은 나의 목표와 너의 목표가 상위의 개념으로 우리의 목표인 것이다.
가부장제가 맞지 않는 맞벌이 시대 집안일도, 할수 있는 사람이,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아웃소싱을 남녀를 떠나 하면 된다. 기자도 무슨 일이 있어도 취재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따라선 우리의 목표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을 위해, 사회적 분업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영역 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전문가들간의 소득차에 의한 서열화가 심화되었다. (의약분업, 의사와 한의사간의 다툼, 미용과 의학 영역의 다툼, 변호사와 다른 전문가들간의 영역다툼, 간호영역 등 사례를 꼽으라면 무수히 많다)
우린 전문가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할 기로에 있는 것이다. 아니 전문가의 출현을 가속화한 사회적 분업화가 무엇인지 국민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제 분업의 시대를 넘어 협어의 시대로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