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모르지만, 현 정권이 성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야당 정치세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지난 정부에서도 당시 여권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세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정치 이야기를 쓰려는 건 아니다.
특히 국내 대기업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지만,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분명 주변에 있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해당 대기업의 성장의 콩고물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기업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지네만 좋을 일이지 우리한테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류 열풍도 마찬가지다. 한류열풍에 조금이라도 이익을 볼 수 있는 방송이나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려는 기득권자들에서는 특별히 응원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네들이 인기와 돈을 버는 일에 그렇게까지 국민들이 응원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필자는 어렸을때부터, 잘되는 사촌 이야기를 들으면, 단지 축하만 하는게 아니라, 괜히 질투가 느껴지고 해서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뭐했다. 그것은 내가 못된 아이라고 인식할까 봐서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가족 구성원은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돈과 명예도 니것이고 니돈과 명예도 내것이 될 수 있는 경제신분 공동체이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우리 사회의 공동체는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잘되는 사람은 자기가 잘나서 잘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익을 공유하기를 꺼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지만 먹고 살려고 하는데, 왜 당신의 성공을 기원하고 축하해줄 필요가 있냐는 식이다.
급기야 혐오 정치가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저변의 공동체의식 상실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제를 진짜 깊이 생각했다면, 소비자의 호주머니가 풍부해야 내가 파는 물건이 잘 팔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서 수출 상대국의 경제사정이 좋아야 우리의 수출도 잘된다고 생각하면 국가 공동체를 넘어 세계 공동체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이나 혹은 미국, 또는 일본마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사촌이 잘되면 분명 콩고물을 떨어뜨리려 해야 하고 상대방은 콩고물이 떨어질 것이니 나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의 정책이나 제도의 미비(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로 말미암아 분명 나는 너의 실패까지는 아니지만, 네가 잘되는 게 싫다.
특히 그래선 안되겠지만, 지금같이 내가 어려울 때는 너도 못되기를 바라는 심정이 불쑥불쑥 드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