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정신, 흔하게 듣는 정치 용어이다. 그런데 그 누구 정신이란게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필자는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정치인들이 하는 말의 상당수는 이해할 수 없거나, 이중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말과 행위에 책임을 지겠다는 지도자라면 은어나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말하고 명확하게 주장을 펼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란 것을 다시한번 말한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누구 정신이라며, 시대에 맞지도 않는 고인의 말을 가져다가 이 시대에 적용하려 하는지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종교를 중심으로 뭉치려면, 종교지도자와 성인의 업적을 미화시키고, 자꾸만 종교로 사람들을 모으려할 것이다. 그럼 누가 득이 될까? 정치경제적인 득이 되는 이가 있기 때문에 성인들을 기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자.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누구 정신 누구 정신하며 자신의 편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적어도 편이 안된다면 자신의 말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찾으려하는 것이란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민들은 어떤가.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서민들의 고인은 그를 기려봤자 정치경제적인 이득이 없기에 심지어 혈족까지도 기리는 일을 중시하진 않지 않는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우린 아직 모른다. 사후세계가 있는지, 제사를 지내주면, 고인에게 좋은 일이 있게 되는지 알수가 없다. 하지만 제사를 지낸 음식은 살아남은 자들의 배를 불리고, 살아 남은자들의 모임을 통해서 더욱 더 돈독한 우의를 다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시대가 바뀌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안이 자꾸만 늘어나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종교나 유물론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그런 추세는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피도 다른 남의 조상은 그렇게 기리고 추모하며, 자신의 조상은 추모하지 않는 것은 어디를 보아도 옳지 못하다. 또한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가졌다 할지라도, 제사를 지냄으로써 비롯되는 이득은 전혀 없다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지금의 과학의 부족한 점을 인정한다면, 유물세계관이 유일세계관이 되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고인의 업적을 고인의 이름으로 기릴려면, 그 고인의 이름으로 지적재산권이든, 공과가 누군가의 이익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겨줘야 이승에서 더욱더 긍정적인 업적을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