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처럼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가면, 그 자리에는 우울감이 찾아왔다. 불안과 슬픔이 휩쓸고간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텅비었고, 많이 배우고 공부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의과학보다 인문사회과학에 가까운 글이다.
대개의 정신적인 문제, 정신질환 상당수는 지능보다는 감정의 문제란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식 및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 안에 물론, 감정 및 감성을 다루는 것을 포함할 수 있지만, 협의의 지식은 감정 및 감성과는 대별될 수 있다.
즉 정신건강에는 감성을 터치하는 것을 연구하고 강구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예술은 주로 지성보다는 감성을 다루는 영역에 들어간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천재가 지성이 높은 것만을 의미하는듯 여기지만, 높은 감성을 지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천재예술가는 당연하고 과학적 천재들 또한 마찬가지다.
한계상황을 넘나드는 정신력과 의지, 그리고 사랑은 천재의 특성이였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사회는 아이큐에 이큐를 동반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는 아이큐 중심의 사회가 되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학에서는 냉철한 머리에 따뜻한 가슴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힘은 협의의 진리일지, 사랑일지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협의의 지식이 부족하기보다 사랑이 부족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에서도 이건 똑같은 기본적인 요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감성 평가는 지능평가보다도 객관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의지 또한 지성보다는 감성에서 발현된다. 모든 일에서 하고자하는 의지야말로 가장 기본이다. 치매 또한 지적 능력이 망가진 것이라고 만 생각할 건 아니다. 지적능력이 망가지기까지의 부정적 감정이 미친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되고, 망가진 지적 능력을 보충하는 감성 및 의지가 있다면 그다지 남은 여생까지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해는 말라. 과학보다 예술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감성을 터치하는 영역에까지 이미 침범했다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미래의 예술과 과학의 융합은 그만큼, 긍정적인 감정을 터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오늘도 불안과 슬픔은 맴돌고 있고, 결계를 흔든다.